신생대 제3기층 퇴적으로 고래·상어 이빨 등 화석 자주 발견 구석기~근세 유적·공반유물 다량 산재…검파형 암각화 밀집

▲ 흥해 중성리비.
△고대 해양역사문화의 중심지 영일만

경북 '제1의 도시'인 포항이 칠포리 암각화를 비롯해 고인돌, 국내 최고(最古)의 신라 금석문, 현대 산업화의 각종 유산이 산재해 있지만 이를 한곳에 담을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병석 국회의원은 최근 동북아 해양문화의 중심인 포항에 환동해의 역사를 담은 '환동해 문명사박물관'건립을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포항은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와 인접해 있는 관계로 인해 역사문화분야가 묻혀지면서 역사와 문화가 없는 도시로 인식됐다.

하지만 포항은 칠포리 암각화를 비롯해 구석기시대 이전부터 해양문화가 크게 성행했고, 오천읍 원동리와 기계면 등지에 고대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지난 2000년 장기면 산서리에서 긁개, 찌르개 등의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 유물이 발견돼 대구·경북지역에서 극히 드문 구석기 유적으로 학계의 관심을 받은 데서도 증명된다.

또한, 북구 기계면과 흥해읍 등에 군집을 이룬 고인돌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강화도의 150기보다 많은 432기로 파악되고 있으며, 칼날과 칼집·방패형 무늬 등 암각화 역시 다채로운 양상을 띠고 있어 학계에서는 암각화의 '본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외에 철기 문화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해양 세력이 존재했을 가능성이나 삼국시대 이전 진한 12국 중 근기국으로 비정되는가 하면, 신라초기인 제 8대 아달라왕조의 '연오랑 세오녀'이야기 역시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으로 건너가서 특정지역의 왕이 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해양세력을 갖췄음을 뒷받침해 준다.

즉 포항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강력한 해양문화를 형성해 왔고, 최근 발견된 각종 금석문 내용을 볼 때도 이 일대가 거대한 집단이 형성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냉수리비.


△포항의 역사문화재가 사라져 간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항은 경주와 같이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진 적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발적으로 이뤄진 각종 공사에서 나온 출토물만으로도 고대문화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나 역사유물을 보관할 수 있는 박물관이 없어 지역에서 발견·발굴된 역사유물들을 포항에서 연구하거나 보관하지 못한 채 경주를 비롯해 타 지역으로 옮기거나 방치되고 있다.

이로 인해 포항의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은 수량면이나 다양성에서 전국적으로 손꼽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00년 장기면 산서리에서 발굴된 후기 구석기 유물들은 경주박물관 등지에 분산 보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9년 흥해읍 중성리에서 발견돼 국내 최고(最高)의 금석문으로 확인된 신라비와 지난 1989년 신광면 냉수리에서 발견된 냉수리비는 모두 국보로 지정됐지만 중성리비는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중이며, 냉수리비는 신광면사무소내에 보호각만 세워진 채 방치된 실정이다.

이로 인해 냉수리비는 외부노출과 풍화로 인해 훼손가능성을 지우기 힘들다.

윷판형 암각화와 별자리 그림이 조사된 청하면 신흥리 오줌바위는 주변의 산불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지난 2000년 초에 발견된 동해면 석리 암각화도 도난 후 되찾는 과정에서 인면(人面) 암각화의 원형을 영영 잃어버렸다.

상황이 이렇지만 박물관 등 연구시설과 연구인원을 갖추지 못한 포항시는 이들 유물에 대한 환수 계획이나 활용 방안은 아예 세우지 못한 채 보존처리와 보수에만 매달리는 실정이다.

포항시가 유물을 수집하지 않은 지는 확인된 기간만 10년이다. 향토사료나 근현대기록물 등 잠재적 가치가 인정된 경우에도 거의 관리받지 못한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오우치 지로(大內次郞)씨의 후손이 포항시에 기증한 사진 11점은 100여년전 일제강점기 당시 포항의 전경을 담은 희귀한 자료로 평가받지만 체계적 보존은 커녕 명확한 관리주체가 없어 소장 여부 자체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시는 각종 공사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될 경우 이뤄지는 긴급 구제발굴 역시 발굴기관과 문화재청이 진행하면서 포항시는 어떤 개입도 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결국 포항은 지역에서 발견되거나 발굴되는 역사유물들이 만만찮은 데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한 연구는 물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 대가야박물관이 있는 고령군의 경우 지난 2013년 타 지역 발굴기관에서 보관중이던 유물 1천668점을 환수해 전시에 활용하고 있으며, 같은 해 상주박물관은 문화재 조사자격을 얻어 자체 발굴팀으로 학술발굴에 들어갔다.



△해양문화권 역사유물을 담을 수 있는 박물관이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마저 평가절하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일만을 중심으로 한 포항 지역의 선사·고대와 해양문화에 주목한 전문가들은 박물관 건립을 주문하고 있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지난 10월 20일 열린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동해를 통해 고대 일본 문명과 교류했다는 은유이자 상징으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포항은 환동해 루트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로서 문명사박물관의 적임지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이창희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도 "삼한시대 흥해읍 옥성리 유적에서부터 포스코로 대표되는 근·현대 산업사까지 아우를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을 위한 포항지역의 역사 컨텐츠는 충분하다고 본다"면서 "동해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돌출된 호미곶은 지형적 특성상 랜드마크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북방계 유이민 다수가 이 일대에 정착했을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관련 유적이 존재할 확률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산서리 유적을 발견하기도 했던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포항은 구석기에서 근세까지 유적과 공반유물의 수량이 많은 편이며 특히 검파형 암각화가 밀집된 칠포리같은 역사 유적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며 "남한에서 가장 넓게 신생대 제3기층이 퇴적돼 고래뼈, 상어이빨 등 이 시기 화석이 자주 발견되고 있어 이 지역의 표본이나 화석만으로 자연사박물관 하나가 충분한데 여러모로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는 치솟는다.

사단법인 경주박물관회에 따르면 올해 '경주박물관대학'의 1년 과정 기초반 수강생 130명 중 34명이 포항에 주소지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11명, 2014년 21명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다.

이와 비슷한 문화유산해설사 양성과정 등을 운영하는 포항문화원의 김미향 과장도 "공고를 낸 지 사흘 정도면 40명 정원 모집이 모두 마감된다"고 밝혔다.

한국박물관협회 윤태석 실장은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문화 욕구가 치솟고 방과 후 학교 등에 따른 교육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제 박물관은 양적 확장과 더불어 질적 제고를 고민하는 시기"라며 최근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따라서 환동해 해양문화의 중심지 였던 포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이자 시민들의 역사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박물관 건립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와 관련 이창희 교수는 "박물관은 무엇보다 지역민의 역사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수단이자 상징으로 포항 시민 스스로를 위해 건립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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