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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은 참 재미없어졌다

스마트폰 블랙홀에 빠질수록 바깥세상과의 교류는 더 줄어 가끔 폰 끄고 오프라인 교류도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등록일 2015년12월10일 21시42분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카톡은 절간이나 교회처럼 멋있고 고귀해졌다. '까똑…까똑.…까까까까까똑…'하며 울어대는 소리는 천상의 목소리다. 다양한 이모티콘은 희노애락애오욕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미세한 느낌과 감정을 생생한 표정과 제스처로 금방 둔갑시켜준다.

그럴수록 눈앞의 바깥세상은 참 재미없다. 사람들은 별로 서로를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 앉으나 서나 거시기 생각뿐. 거시기가 손에서 멀어질까 안절부절. 일부러 만난 모임, 명사를 초청한 강연회에서도 그렇다. 모두 바깥을 눈 여겨 보지 않는다.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그냥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각자 늘 하던 그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회사도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틈만 나면 사람들의 시선은 슬금슬금 무릎 위의 스마트폰으로 도망친다. 세상이 재미없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이런 풍조가 세상을 더 재미없게 만들기도 한다. '구글학교-구글대학' 그곳의 지식정보가 곧 바이블이고 복음이고 스승이다. 모두 그쪽으로 달려가 머리 숙이고 예배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학교, 우리대학들은 거의 망한 거나 다름없다. 스마트폰으로 검색되지 않는 무엇, 의사소통되지 않는 누군가는 없는 것과 같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했지만, 이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전국민이 자연적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유교의 가르침 덕이 아니라 기술과 기계 발달의 힘이다. 지금 이 시간 삼천리 방방곡곡 묵묵히 고개를 떨군 저두족(低頭族)들은 과연 희망인가 절망인가.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지 않다. 흐름은 흐름대로 중요하니 일부러 거역할 필요도 거품 물고 찬양할 생각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세상의 재미가 쏠쏠 스마트폰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 물건 하나만으로 웬만한 지식정보는 커버할 수 있다. '나는 검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검색 하나로 삼천대천세계가 손끝에서 생주이멸한다. 고대적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는 이제 전지구적으로 연결되는 벗-지식정보의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검색'이 '사색'을 넘어섰기에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언젠가 반가검색상(半跏檢索像)으로 바뀔 지도 모른다. 백남준은 'TV부처'라는 작품을 남겼지만 그때 만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스마트폰부처'도 만들 수 있었으리라.

그나저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세상이 참 재미없을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걱정이다. '교자졸지노(巧者拙之奴)'. '교묘한 것은 졸렬한 것의 머슴'이라 하였다. 기계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그럴수록 인간의 처지는 점점 더 졸렬해진다. 졸렬한 인간이 교묘한 기계를 부리는 것은 일단 좋다.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인간이 기계의 머슴이 될 때 말이다. 어느 장소이든 공적 영역들이 대부분 스마트폰에 흡수되어 버렸다. 그 블랙홀에서 우리의 공공 영역은 실종된다. 공중전화도, 공공적 대화 장소도 점점 줄어든다. 개개인이 온라인을 통해 세계를 만나는 일은 더 쉽고 더 확대되었으나 오프라인의 건강한 교류는 더 줄어들고 더 힘들어졌다. 온라인에서 우리들이 점점 즐거워하는 동안 바깥세상은 점점 더 재미없어진다. 활기를 잃고 맥이 빠진다. 몸은 유연성을 잃고 전자파는 얼굴은 감싼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는 노래는 부르지 못한다. 가끔 폰을 끄자. 그리고 그 너머로 행군해가자. 두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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