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현장 - 문경 '아리랑 도시' 선포

'고개(嶺)'를 주제로 한 민족 대동(大同)의 노래 '문경아리랑'이 서울의 안마당 세종로를 감성으로 수놓았다.

경상북도 문경시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팔도 아리랑을 품고 아리랑민족관을 건립하기 위해 13일 저녁 '세상의 울림, 한국의 소리 아리랑'을 주제로 전국 최초로 '아리랑도시 선포식'과 '아리랑 일만 수 도록(圖錄) 출판 기념식'을 가졌다. 최근 분열과 투쟁의 상징이 된 '민중총궐기'시위로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신명나는 아리랑을 외친 것이다.

일만 수 도록은 지금까지 불린 아리랑 2만5천수에서 뽑아낸 것이 1만68수다. 이종선 한국서학회 이사장은 "지난 2년 동안 124명의 서예인들이 붓글씨로 한지에 아리랑이라는 동일한 시제(詩題)를 가지고 일만 수를 쓴 것은 세계 서예사상 최초 최대의 제책(製冊,3,136쪽 6권 1질)"이라고 밝혔다.

이날 문경새재아리랑을 전승 한 송영철(1917~2001) 고인의 영상과 출판과정, 도록 헌정식 후 한산 해주 정선 밀양 진도 본조아리랑이 차례로 공연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초등학생에서 8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참석자 500여명이 손에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합창한 팔도 아리랑 메들리는 쌀쌀한 서울 광화문 거리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문경이 아리랑도시를 표방하는 연유는 아리랑을 문헌상 최초로 채록한 헐버트에 기원한다. 서양인 최초의 지한파(知韓)인 벽안의 이방인 헐버트(1863∼1949)는 서양음계로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라는 가사가 실린 문경새재아리랑을 채보(採譜)하여 영문 잡지 '한국소식(The Korean Repository)' 1896년 2월호에 실었다.

문경시는 2013년 8월 헐버트아리랑비와 아리랑 비림(碑林)공원도 조성했다. 또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른 송영철옹이 80여 성상(星霜)을 살았던 문경읍 하초(下草, 아랫푸실)리를 아리랑마을로 가꿨다. 또 아리랑유랑단을 만들어 파리, 터키, 중앙아시아, 이집트, 칠레 거리에서 공연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산광역시 부시장 출신으로 아리랑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고윤환 문경시장은 '아리랑 문화유산센타' '아리랑재단' 북한 아리랑가사 수집 쓰기 등을 한국 최초로 수년 내로 이뤄 낼 것이라고 의욕적인 청사진을 밝혔다.

아리랑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자들, diaspora)'의 민족 이스라엘과 지금도 유랑하는 쿠르드 족 못지않게 역사의 험준한 고개를 넘나든 한민족의 삶 자체의 언어 표현이다. 아리랑의 '랑'은 령(嶺)의 변음이며 '아리'는 '장(長)'의 고어로 '아리랑'은 곧 '긴 고개'를 뜻한다는 게 일설이다. 중원(中原)과 요동벌을 누비던 진한(辰韓)인들이 새 세상을 찾아 험준한 백두대간을 넘고 압록강과 아흔 아홉 굽이 아리랑 고개를 숨 가쁘게 넘어 낙동강변에 신라를 건국한 것이다.

전 세계 민족이 부른 노래가운데 아리랑처럼 애창된 노래가 있을까. 한민족이면 누구나 심연에 DNA처럼 깊이 흐르는 한국혼이 담긴 아리랑은 한국말을 잊은 외국 교포 후세들도 읖조린다. 아리랑은 북한과 저 멀리 남미 해외 동포를 포함한 전 세계 흩어져 있는 8천만에 이르는 한민족이 하나로 합창할 수 있는 독보적인 민요다.

저무는 2015 을미년에 서울 한복판에서 메아리 친 아리랑은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를 극복해 7세기 삼한일통에 이어 다시 '이한일통(二韓一統)'의 위업을 꿈꾸며 부르는 노래로 적합하다. 갈라지고 막힌 한국인들의 가슴을 모으고 뚫어줄 희망의 닻줄로 제 격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