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관 '영천역사문화박물관' 문화사랑방 역할 기대

▲ 정만양, 정규양 형제의 '양선생훈지록.' 본래 19책 중에서 7번째 책이 빠진 18책을 소장중이며 동생인 정몽양이 직접 쓴 유일한 원고본.

△ "'영천'만 들어가면 무조건 다 모았죠."

20년간 문화재를 수집한 스님이 있다.

전국 각지에 정보망을 두고 소식이 들리면 불원천리 그 길로 가서 사들였다.

그렇게 1만5천여점을 모은 그는 이제 번듯한 박물관을 지어 그 문화재들을 들일 예정이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애써 모아온 것은 불교문화재가 아니다.

종단의 지원을 받는 성보박물관을 지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가 집요하게 모은 것은 오직 한 지역, 영천의 문화재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용화사 주지 지봉스님(51)이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문화재 환수 운동'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20여년전부터 타지에 흩어져 있던 영천의 문화재를 모아왔다.

▲ 1800년대 초반 옛 영천의 관아, 향교 등 건물 배치를 확인할 수 있는 영양도.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인문지리서 '조선환여승람' 120여권 중 영천편 단책을 사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1800년대 초반 옛 영천을 담은 유일본 고지도 '영양도'를 비롯해 성리학자로 영천에서 후학을 기르던 정만양·정규양 두 형제의 '양선생훈지록' 원고본 18책 등이 그가 수집한 컬렉션이다.



"'영천'만 들어가면 무조건 다 모았죠."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던 영천 지역의 문화재 중 60~70%는 모았으리라 그는 자부했다.

그의 수집 목록이 어느 정도인지 이제 알만한 이들은 안다.

지난해 10월, 영천시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하면서 자료 10점을 빌리기 위해 그에게 정식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 1800년대 초반 옛 영천의 관아, 향교 등 건물 배치를 확인할 수 있는 영양도 속지. 사진/ 임찬혁기자



△ 다시 영천에서

그가 영천과 연을 맺은 건 지난 1972년부터였다.

여덟살 무렵 통도사의 말사인 용화사에 맡겨졌다. 스물넷이 되던 1988년에 통도사에서 출가, 1996년에 불교문화원을 열면서 영천에 뿌리를 내렸다.

불교문화원을 통해 그는 당시 인구 7만 남짓하던 소도시 영천에 다도·대금 등 10여개의 강좌를 열었다.

영천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겠다는 야심을 품었으나 회비를 전혀 받지 않고 운영한 탓에 1년 반만에 거덜났다.

그리하여 1997년, 피신하듯 울릉도의 보덕사로 들어간다. 3년 가량 머물면서 공부를 했는데 특히 영천과 영천의 문화재에 집중했다.

우연히 '조선환여승람'의 영천편을 만나고 10만원에 사들이면서 문화재에 눈을 뜬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다시 영천으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수집활동에 나섰다.

▲ 용화사 소장 석조여래입상. 통일신라양식이면서 뒷면에 선각 입상이 새겨진 특이한 불상으로 평가받는다.

고물상, 고서상, 골동상을 가리지 않았고 서지학자나 미술사 교수들의 도움도 받았다.

간간이 경매장도 찾았다.

그 사이 그는 어릴 때 맡겨졌던 그 용화사의 주지로 임명됐다.

박물관은 불교문화원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섰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은 수장고가 없는 탓에 아직 정식 등록 절차를 마치진 못했다.

지난 6월 사업자등록을 마치면서 첫 걸음을 뗐다.

서지학을 전공한 대학원생과 함께 유물 목록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별도 부지에 정식 개관을 목표로 준비중인데, 2017년쯤일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영천에서 먹고 자랐으니까요."

왜 영천인가하는 물음에 돌아온 답변은 간명했다.

▲ 화기 연구의 권위자인 박재광 건국대박물관 학예실장이 보존상태와 제작연대를 근거로 중요하게 평가한 쌍자총통. 명문에 의해 1853년에 제작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보물 8점, 지방문화재 20점 지정 예상

1만 5천여점 중 신도가 기증한 유기그릇 두 점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가 직접 발품을 팔아 사들였다.

도난품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보이면서도 광배 뒷면에 선각 입상이 새겨져 있어 극히 드문 양식으로 평가되는 석조여래입상, 명문에 의해 제작연대가 확인되고 학계 권위자가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현존하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여 국가 지정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감정평가를 내린 쌍자총통 등이 주요 수집품이다.

정식 개관 이후 감정 평가를 거쳐 문화재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쌍자총통을 비롯 8점 가량은 보물로, '영유도'와 '양선생훈지록' 등 20점 가량은 지방문화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지류에 대한 감정 평가는 상당 부분 마쳤고, 4천 500여점 가량의 불교 문화재는 그가 직접 평가를 내렸다.

본령인 불교 연구와 더불어 영천과 문화재 전반에 대한 공부를 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지난 2012년 동국대 대학원에 입학해 올해 초 '대승의 불성사상에서 본 조선후기 관음보살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 울릉도에 연면적 1천300여평, 지상 3층 규모의 '독도게스트하우스' 건립도 준비하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독도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며 내년쯤 착공할 예정이다.

그는 "독도를 한 번이라도 밟아본 이라면 왜 독도를 지켜야 하는지 알게 된다"면서 "청소년들에게 그 발자국의 감격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분쟁지역으로만 접할 외국의 청소년들에게도 개방할 생각이다.

아울러 최근 영천의 한 지역신문에 박물관 소식을 전하는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박물관의 답사나 전시 일정과 아울러 '이 주에 찾아온 영천문화재'를 알리고 있다.

매주 1회 게재되는 광고에는 '영천문화재 되찾기 운동본부'라는 글자 아래 '영천 관련 모든 자료를 구입 또는 기증받는다'는 안내가 굵은 글자로 박혀 있었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은 결과물이 아니라 후대를 위한 첫발이라는 말이 공허한 수사로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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