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인 '술잔 돌리기' 치명적 건강 위험 초래 스스로 절제 노력 필요

▲ 배경도 세명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즈음이면 적어도 한두 번은 송년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송년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 아닌가 한다. '백약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술이 사람들 모임이나 행사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어색하거나 냉랭했던 대인관계를 터주기 때문에 모이는 자리마다 등장하는 것이겠지만, 한편에서는 '백독의 수령'이라는 다른 이름답게 술이 가져오는 수많은 개인적·사회적 피해가 송년회가 많은 연말에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데에도 술은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잘못된 술자리 문화에 대한 지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몇 가지 악습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작(酬酌)과 혼합주 관행일 것이다. 술잔을 돌리는 것은 서양권은 물론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술 문화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다양한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공중보건학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개인의 의사에 반해 마시도록 하는 강압성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마시는 당사자들에게 개인의 주량을 넘어서서 과음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폭탄주나 '소맥'과 같이 두 가지 이상의 술을 혼합하여 알코올 도수를 조정함으로써 새로운 술의 미각을 좇는 행태가 결합되면서 즐거워야 할 모임이 자칫 건강을 망치는 모임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아주 높아진다.

술로 인한 위해성을 줄이고 바람직한 음주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표준 잔(standard drink)의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소주, 맥주, 막걸리, 양주, 그리고 와인 등 갖가지 종류의 술에는 각각 고유의 술잔이 존재하는데, 이는 서로 모양이나 용량이 달라도 한 잔을 마셨을 때 비슷한 신체반응을 유도해낼 수 있게끔 대략 10g 정도의 알코올을 수용하도록 제작됐다. 어떤 술이든 각 술잔 1잔이 바로 1 표준 잔이라고 보면 되는데, 건강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바람직한 음주량은 남자의 경우에는 하루에 4 표준 잔 이내이며, 여자나 노인의 경우에는 3 표준 잔 이내이다. 그 이상의 음주량으로 술을 마실 경우 고위험 음주로 간주하는데, 고위험 음주를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개인의 주량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소주 1병'이나 '맥주 2병'처럼 두리뭉실하게 계산하다보면 필요 이상으로 과음하게 될 소지가 많으므로, 차라리 주량을 '4 표준 잔' 같이 세밀한 단위로 계산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주량만큼만 마시게 된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포항은 최근 수년간 매년 조사에서 전국적으로 손에 꼽히는 고위험 음주 지역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 지역에 어서 속히 바람직한 음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술에 대한 개인의 절제 노력도 필요하지만, 강제로 술을 권하지 않고 술에 대한 상대방의 기호를 존중해 주는 건전한 사회적 분위기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첨잔을 하면 안 된다는 우리의 음주 에티켓은, 상대방의 잔에 술이 남아 있으면 '더는 마시고 싶지 않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재해석돼 파급될 필요가 있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 12월 송년의 달에 간절히 요구되어지고 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