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쓸데없는 싸움은 멀리하고 술에는 주도가 있음을 잊지말고 송구영신을 해야

요즘 연말을 맞아 송구영신(送舊迎新)한다면서 매일 술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예부터 술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중국의 남북조시대 유령(劉伶·221~300)이라는 인물일 것이다.

이 사람이 지은 주덕송(酒德訟)을 읽으면 유령이라는 사람의 주량과 인물됨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죽림칠현의 한사람으로 노장(老莊)사상의 청담(淸談)에 몰두하고 술을 마시며 속세의 모든 예법을 무시하는 생활을 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당시의 부패한 사회에 대한 반항의 수단으로 벼슬을 멀리하고 현실 도피의 일책으로 산림으로 숨어든 사람들과 같이 그도 이들과 같이 주림(酒林)으로 도피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술과 관련된 일화를 많이 남겼다.

유령은 항상 외출을 할 때는 한 단지의 술을 가지고 다니는데 종자에게는 삽을 가지고 뒤따르도록 했다. 그는 늘 종자에게 "내가 술을 마시다 죽으면 그 죽은 자리에 바로 묻어 달라"고 일렀다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또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술을 끊으라고 애원을 하자 "신에게 맹세할 신주(神酒)를 가져와라"고 한 후 부인이 술을 가져오자 "하늘은 유령을 낳고 술로써 이름을 날리게 하시니…"하고는 신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금세 취해 버렸다. 이 일이 있었던 후 부인은 그에게 술을 끊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이 밖에 그는 술에 취하면 방안에서는 옷을 모두 벗는 버릇이 있었는데 어느날 술에 취해 옷을 홀딱 벗고 잠을 자는데 어떤 사람이 유령을 찾아 방안에 들어 왔다. 잠에서 깬 유령은 그를 보고 "나는 천지를 집으로 삼고 방을 잠방(옷)이라 여기거늘, 어찌 자네는 내 잠방 속으로 들어왔는가?" 하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또 어느 날 성질이 급한 사람과 술을 마시고는 크게 취한 상태서 싸움이 벌어졌다. 상대가 주먹으로 때리려 하자 "나는 계륵(鷄肋)이기 때문에 자네의 주먹을 받을만한 인물이 못되네"하며 웃음을 터트리자 상대도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유령은 이같이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쓸데없는 싸움은 멀리 하는 폭넓은 인성을 가진 산림 군자의 면을 보여 주고 있다.

공자도 논어에서 "유주무량불급난(唯酒無量不及亂)"이라고 했다. 오직 술은 얼마든지 마시되 이지러지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이글에서 보면 공자도 두주불사의 주량을 가진 듯 술에 대한 경계의 글을 남겼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칭찬하는 습속이 내려져 오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우리도 옛어른들이 "남자는 자고로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큰일을 할수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내려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술에 대해서만은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보(杜甫)의 '음주팔선가(飮酒八仙歌)'에도 경음마식(鯨飮馬食)이라는 글이 있다. 글의 뜻 그대로 "고래처럼 마시고 말처럼 먹는다"는 뜻으로 술 잘 먹는 것을 대견하게 보고 있다.

중국에서는 술을 잘 먹는 사람을 칭찬하는 글에 해량(海量)이라는 말도 전해 오고 있다. 즉 술을 바닷물처럼 마신다는 뜻이다. 이글에 딱 들어 맞는 사람이 유령이라는 인물이다. 그가 남긴 주덕송의 일부를 보자.

"어떤 대인(大人)선생이/ 천지개벽을 하루 아침으로 삼고/만년을 찰나로 삼으며/ 해와 달을 빗장으로 삼고/ 광활한 천지를 뜰과 길거리로 여겼었다/ 길을 다니는데 / 수레바퀴 자국이 없으며/ 거처함에 정해 놓은 집이 없으며/ 하늘을 천막으로 삼고/ 땅을 자리로 삼으며/ 뜻이 가는 대로 내어 맡기는구나/ 머물러 있을 때는/ 크고 작은 술잔을 잡고/ 움직일 때는 술통과 술병을 들고/ 오직 술에만 힘을 쓰니/ 어찌 그 나머지를 알겠는가?/ 귀하고 신분이 높은 자와/ 학덕이 높은 선비가/ 선생의 소문을 듣고/ 그 까닭을 논하러 와서 / 눈을 부라리고 이를 갈면서/ 예법을 늘어 놓고/ 칼끝처럼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 선생은 이를 개의치 않고/ 술 단지를 들고 /술잔을 입에 물고/ 술로 양치질을 하고/ 수염을 털고/ 두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가/ 누룩을 베개로 삼고/ 술 찌꺼기를 깔고 누워/ 생각도 없고/ 걱정도 없이/ 즐거움으로 도도한 모습이더라/…피부에 파고드는/ 추위와 더위와 즐김과 /욕심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만물을 굽어보니/ 어지러워 마치/ 장강(長江)이나 한수(漢水)에 떠 있는/ 부평초와 같구나/ 따지러 온 두 호걸이 옆에 있어도/ 마치 나나니벌과 배추벌레를 대하는 것 같구나.

주덕송을 읽고 유령의 행동을 따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술에는 주도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며 송구영신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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