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새로운 역할 '시장영역에 대한 감시자' 심층보도 등 감당할 과제

▲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언론다운 언론을 요구한다. 19일 팔공산 연수원 경북일보사 사원 연수에 강사로 초청된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직업윤리' 특강에서 확인된다. 강의 요지는 "미디어직업 종사자에게 부여되는 높은 '소셜 프레스티지(social prestige)'의 의미는 '사회적 사명'이고, 전문지식(사회 통찰력)과 전문기술(예리한 해석과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프레스티지는 책무 특권 명성 권위 위신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기자의 새로운 역할로 "시장영역에 대한 감시자"도 강조됐다. 객관보도 권력 감시에 더해 심층보도 등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과제를 새삼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다.

 제5공화국이 무너지고 언론자유 시대를 맞은 1988년 기자에 입문한 이래 오랜만의 언론 장고(長考)였다. 새색시가 친정어머니에게 받은 시집살이 계율 같았다. 우리 사회는 정치 관료 대학 종교분야 등 어느 곳 할 것 없이 직업윤리가 부재하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하다. 세월호 참사 선장이 400여명의 고객을 남겨두고 가장 먼저 탈출한 것은 직업윤리의 대표적인 부재다.

 2000년대 이후 심화된 언론 사명(使命) 부재는 부패하고 약육강식의 사회를 웃자라게 했다. 독립과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의 구현에 충실했던 선배 언론인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외양은 언론의 탈을 쓰고 돈과 이권을 찾아 나선 행렬이 꽤나 길다는 뭘 좀 아는 사람들의 평가다.

 언론인의 직업윤리는 한마디로 '기자정신'으로 압축된다. 그 정신의 뿌리는 '혼(魂)'이다. 혼이 살아있는 게 정신이다. 선비정신 장인정신 군인정신 같은 것이다. 대표적인 기자정신 발로(發露)는 동아일보 '자유언론 실천선언'. 1975년 180여명의 동아기자들의 유신체제에 대항 저항이었다.

 고려 말 이성계의 왕위찬탈을 용인하지 않은 '두문동파'로부터 대한제국이 문을 닫은 1910년 자결로 저항한 선비들까지, 선비정신은 500년 나라를 지속하는 힘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목숨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외쳤는데 지금 한국의 언론은 그 때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장인정신은 국제사회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있게 한 산업화의 동력이었다. 일본 메이지의 군인 정신은 한국과 만주국을 식민지로 하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제국을 만들었다.

 언론의 역사적 사회적 사명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여전하지만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난치병을 앓고 있다. 경제 침체로 언론의 수익성이 급락하면서 직업의 의미로서 양대 기둥 중에 하나인 소득창출이 낮아졌다. 이 부분에 대해 국가도 애써 외면한다.

 중세에 종언을 고하고 근세의 여명(黎明)을 연 인물 중에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의 조국 피렌체가 16세기 초 스페인군에게 점령된 이후 새 지배자가 된 메디치가(家)의 형틀에 매달려서 한 유명한 말이다. "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 남는다."

 새 세상에 필요한 참 언론에 충성하면서 가난한 붓을 붙들고 좋은 언론을 그리는 이도 있다. 가물에 콩 나듯 하지만…. 그러나 이들의 프레스티지에 대한 평판은 짧고 고통은 길다. 이들이 오히려 바보로 조롱받는 웃지 못 할 역설이 일어나는 사회 분위기다. 묻고 싶다. 직업의 신(神)에게. 언론 사명(使命)에 대한 고백(告白)이다. 직업의 소명을 위해 그 고통을 얼마만큼 견디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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