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순 계명대 교수 책거리 특별전 - 전통민화 전시회 '지혜의 숲을 거닐다'

▲ 권정순 교수.
'책가도(冊架圖)'의 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전통민화 전시회가 마련된다.

권정순 계명대 교수의 책거리 특별전 '지혜의 숲을 거닐다'가 22일부터 27일까지 수성아트피아(대구시 수성구 무학로)에서 열린다.

책을 비롯해 선비들이 즐겨 쓰던 문방구를 중심으로 각종 기물을 배치한 10폭 병풍 7점과 30호 내외 작품 10여점이 전시된다.

높게 쌓아놓은 책과 함께 문방사우(文房四友), 아름다운 도자기, 기이한 수석,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석류, 화려한 꽃과 신기한 장식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 색채가 아름답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것이 작품 특징이다.

한편, 전시장 옆방에서는 권 교수의 지도를 받아 온 40여 제자들의 소품도 감상할 수 있다.



권 교수 민화 작품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색채다.

민화의 화려한 원색은 튈 것 같으면서도 절제돼 있다. 그리고 고향의 품 같은 아늑함을 준다. 아무리 봐도 싫증 나지 않는다.

"민화는 한마디로 색채의 예술이며 색채 속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게 권 교수의 지론이다.

권 교수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 등에서도 화려한 컬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지만, 색채에 관한한 민화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서양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더없이 화려하지만 화려함을 넘은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며 색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권 교수의 초기 작품은 스승 파인 송규태의 영향으로 화려한 원색을 기조로 강렬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이 주를 이뤘다. 점차 연륜을 더해가며 한결 정제되고 우아해진 자신만의 독특한 컬러 세계를 완성했다. 그의 작품이 은근하면서도 더욱 빛을 발하는 또 다른 원인은 옻칠을 한 한지에 있다.

다른 화가들이 아교를 많이 쓰는 것과 달리 그는 1년에 한 번씩 한지에 옻칠을 해서 2, 3년 묵혔다가 사용한다. 그러면 한지는 연한 갈색으로 변하면서 은은하게 밝아지는데, 이 한지와 색채가 절묘하게 결합해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의 발색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축은 완숙한 필력이다. 민화의 선묘를 위해 서예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덕분에 '금강산도' '서궐도' 등 세밀한 필치를 요하는 그림의 선이 더없이 원숙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 책가도.


△ 민화와의 만남

권 교수가 민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서였다.

대학 졸업 후 영국대사관에 근무할 때, 외국 사람들이 유독 한국 민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본 후부터다.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가장 향토적이며 한국적인 것이었다. 어릴 적 권 교수의 고향인 안동에서는 집집마다 그런 그림이 있었다. 권 교수의 다락방에도 있었다. 말하자면 인당은 그 그림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직접 민화를 배우겠다는 꿈을 이룬 것은 자녀들을 다 키우고 중년 고개에 들어선 뒤였다. 뒤늦게 불붙은 민화에 대한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 몰랐다.

이후 20여년간 민화 보급을 위해 노력했다. 안동대, 금오대 등에 민화강좌를 개설해 대학을 거점으로 민화교육을 펼쳤다. 한국민화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전국 최초로 대학원에 민화학 전공을 개설했고, 국제민화세미나를 열어 한국 민화 세계화의 가교 역할에 나서고 있다.

▲ 책거리.


△ 전통민화의 계승

그는 소위 '창작민화'보다는 전통민화의 계승과 재현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여기에도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첨단 전위 음악을 하더라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지 않냐"고 반문한 권 교수는 "옛 작품의 재현과 모사를 통해 민화의 기법을 완전히 익히는 데도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기법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어떤 기발한 그림도 민화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화만의 독특한 기법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서도 옛 작품의 모사와 재현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 중 창작민화에 가까운 것들이 아주 없거나 그가 창작민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화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창작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지 하려면 제대로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신 그의 작품들이 의미 있는 장소를 장식하며 대중과 마주한다. 경복궁 교태전에 있는 '곽분양행락도', 주한미국대사관저에 있는 '일월오봉도' 8폭 병풍, 뉴욕코리아쏘사이어티의 '십장생도' 8폭 병풍, 경북도청에 있는 '서궐도'와 '십장생병풍', 캄보디아수상관저에 있는 '십장생도' 10폭 병풍 등이 하당의 역작들이다. 이 외에도 '해를 품은 달' '구가의 서' 등 인기 드라마에서도 권 교수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 더 큰 계획과 꿈

현재 권 교수에겐 가까운 계획과 좀 더 큰 꿈이 있다.

가까운 계획은 더 효율적인 민화 교육을 위해 색채에 관한 자신의 이론과 노하우가 담긴 저서를 한 권 펴내는 일이다.

좀 더 큰 꿈은 유교와 민화의 결합이다. 다양한 고전적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유교문화진흥원(구미시 선산읍)에 발맞춰 '계회도' '행렬도' '서궐도' '책가도' 등 작품 활동을 전개해나갈 예정이다. 한편, 이번 전시의 개막행사는 동짓날(22일) 오후 4시에 마련된다.
남현정 기자
남현정 기자 nhj@kyongbuk.com

사회 2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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