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도 정통…깨달음 체현 한계 현실과 이상 사이 안주못해 번민

▲ 김진태 전 검찰총장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천도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비방하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는다)

寄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득이 되느니라)

이 시는 비가 오다가 개고, 개다가 또 오고 하는 자연현상을 빌어 인정세태의 무상함을 풍자한 시다. 인정과는 무관한 자연현상도 이렇게 변화무쌍한데 이해관계로 변덕이 죽끓듯하는 인간세상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칭찬했다가 그냥 비난하고, 명리를 피한다고 하면서 명리를 구하고. 그러나, 봄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산은 구름이 오고 가는 것을 다투지 않는다. 어디에선들 자족하면 그것이 바로 평생에 얻는 바가 되지 않겠는가.



조선시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시 '사청사우(乍晴乍雨)'다.

매월당은 다섯살에 이미 시를 짓는 등 신동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세종의 총애을 받아 후일 중용하겠다는 언질도 받았다.

하사받은 비단을 끌고 간 일화는 그의 타고난 재기를 말해준다. 과거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삭발하고 설잠(雪岑)스님이 돼 천하를 주유했다.

그러나 이미 유학의 깊은 물에 몸이 흥건히 적셔진 상태에서 이해한 불교의 화엄과 선은 사변에 치우칠 수 밖에 없었고, 유·불·도 등 삼학에 정통했다고 하지만 불교의 깨달음의 체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일체개공(一切皆空)은 이해 했지만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두려웠던 것인지, 아니면 숙세의 업연이 너무 깊었던 것인지 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만행의 길을 걸었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타고난 비판의식이 있었지만 선악이나 시비는 늘 함께 함을 이해했기에 스스로 나서지도, 남으로 하여금 나서게 하지도 않은 채 방황과 번민, 풍자와 일탈이 그의 삶이 되었다.

그러니 성리학자 퇴계가 그를 '색은행괴(索隱行怪)'하다 하고, 율곡이 '심유적불(心儒迹佛)'하다 말한 것이 어찌 조소일 수만 있겠는가. 어디에도 마음을 놓지 못한 그가 부여 무량사에 그의 해골을 누인 심사가 궁금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불교가 배척돼 별다른 불교적 저술이 나오지 않고 있던 시대에 유학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체계로 저술된 불교 관련 그의 글들은 불교를 비판하던 유학자들에게마저 부처의 가르침이 면면히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참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매월당 자신에게 보내는 시일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달래며 이승에서의 삶을 엮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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