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어린 홍류담 배를 띄워서 거문고 가락 詩를 걸어 風流 만선이라네

▲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 형제가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모고헌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뽐내고 있다.

영천시 화북면 별빛로 횡계는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 형제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성리가 구현되는 꿈을 실행하던 곳이다.

주자가 그랬던 것처럼 계곡의 절경지에 '구곡 (九曲)'을 설정한 뒤 '횡계구곡'이라 이름 짓고 도학적 삶을 실천하던 곳이다.

계곡 굽이마다 시를 지어 구곡시를 완성했고 바위와 절벽에 오래된 시나 경전에서 따온 이름을 붙여 은둔의 즐거움을 더했다.

모고헌은 그 횡계구곡 중에서 3곡이다. 4곡인 옥간정에서 하류로 50m 정도 떨어져 있다. 옥간정보다 15년 앞선 1701년에 지었다.

본래는 '태고와(太古窩)'라고 했으나 1730년 제자들이 개축하면서 '모고헌'이라 불렀다. 태고와는 '아득한 옛날을 그리워 하며 지은 집, 또는 그런 사람이 사는 곳' 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태고와를 지은 지수 정규양의 롤모델은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이거나 신이었던 복희씨였다. 복희씨는 중국의 천지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인간에게 목축을 가르쳤고 주역의 팔괘를 창안해 사람과 자연의 이치를 짐작하는 법을 가르쳤다. 거룩한 덕이 해와 달 같다고 해서 '태호 복희씨', 큰 여름하늘 간은 신으로 불렸다.

아득한 고대의 경쟁이 없는 시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해 부귀를 이루지 않는 사회가 훈수 지수 훈지 형제의 이상향이었고 그 마음을 담아 지은 정자가 태고와다.

▲ '태고와(太古窩)' 현판.

모고헌은 이같은 스승의 뜻을 존중해 지수의 제자들이 지은 이름이다. '옛날을 사모하는 사람이 모이는 집'쯤이면 되겠다.

옛것에서 새것을 찾는다는 '온고이지신'과 옛것을 배워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학고창신'의 정신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정자 옆 절벽 아래에는 보현산을 시작으로 옥간정 아래 영괴담과 제월대, 풍월대를 지나온 계곡물이 급물살을 타며 빠르게 내려가며 제법 큰 소리를 내고 있다. 오래된 숲은 수려하고 기품이 있다.

정자 뒷마당에는 훈지형제가 제자를 가르치던 횡계서원이 들어서 있고 정자와 서원 사이에는 300년된 향나무가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로 아담한데 정자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동서남북 사방을 마루로 두른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고 있다.

정자 내부는 온돌방이 가운데를 온통 차지하는 바람에 사방 통로는 50㎝ 남짓한 공간만 있다. 난간에 기대어 남쪽 아래 절벽을 흐르는 계곡을 굽어보니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장대하다. 가슴이 탁 틔어 온다.

계곡 너머 들판과 산이 정자 속으로 빨려 들어오고 정자안으로 들어온 들판과 산이 난간에 기대어선 내 가슴속으로 공간이동 해오는 듯 짜릿한 쾌감에 빠진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는 유명한 CF가 생각났다. 시한수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겨우 광고 영상을 되새김질 하는 비루함 이라니.

모고헌은 앞서 말한대로 횡계구곡의 3곡이다. 훈지형제는 태고와와 진수재를 주제로 3곡시를 읊었다.

삼곡이라 깊은 제방 배를 띄울만하고
움집 중에 태고와는 몇 년이나 되었는가
진수재의 한 일은 모름지기 서로 힘씀이니
수많은 영재를 나는 가장 사랑하네


절벽 아래 계곡이 홍류담이다. 계곡물이 굽어들면서 자연스레 생긴 못이다. 못 이름만 놓고 보면 절정의 가을에 붉은 단풍잎이 물위를 둥둥 떠내려가는 그림을 연상하기 어렵지 않다. 물이 제법 깊었던 모양이다.

훈수 지수 형제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달빛아래 뱃놀이를 하며 거문고를 타기도 했다.

"8월에 작은 배가 비로소 만들어지니 대채로 서낭 제군의 힘이다. 16일 밤에 산의 달이 매우 밝아 시험삼아 제군과 더불어 배를 뛰우고 홍류담에서 노닐며 뱃머리에 기대어 거문고를 타니 생각이 초연하여 율시를 읊어 제군에 사례했다."
'훈지양선생문집' 중에서

훈지형제가 작은 계곡에서 굳이 배를 타려는 했던 이유는 주자가 무의구곡을 경영하면서 구곡유람을 배로 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산수에서는 현실적으로 배로 하는 구곡유람이 불가능했다.

▲ 글·사진
김동완 자유기고가
형제는 결국 3곡 홍류담, 붉은 단풍이 둥둥 떠가는 못에 작은 배를 만들어 띄우고 거문고를 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들은 또 배를 타고 낚시까지 즐겼다고 하니 장자의 '지어락'의 의미를 실천적으로 즐겼던 모양이다.

훈지형제는 이후로도 여러차례 이곳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횡계 위에 떠오르는 달과 별을 보면서 소동파의 흥취를 느꼈고 언덕을 스쳐오는 가을 소리를 듣고 그것이 주자의 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형제는 그 흥취를 이렇게 시로 읊는다.

한강의 밝은 달은 소선의 흥이고
두 언덕 가을 소리 회로의 시로다
낚싯대 드리우되 어찌 어부의 즐거움을 가지리오
거문고 타며 속인이 알게 하지 말리니
제군의 의치는 또한 감흥이 많으니
배에 가득한 풍류는 나의 어리석음을 길게 하네


■ 가볼만한 곳 - 횡계서당

횡계 서당은 모고헌 뒤쪽에 있다. 모고헌이 횡계서당의 부속건물이다.

원래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을 배향하는 횡계서원으로 건립했으나 훼철되어 횡계 서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1737년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을 배향하는 서원을 건립하려 했으나 서원남설을 막는 나라의 제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1760년 사교당에서 훈지 형제의 향사를 올렸다.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으며, 1923년 횡계 서당으로 복원하여 복향했다.

횡계 서당은 강당과 동재가 직각으로 배치돼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처마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3칸을 마루방으로 드리고 양 옆을 온돌방으로 꾸몄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횡계 서당의 마당 가운데 수령이 300년 된 향나무가 있으며,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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