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이석우 지음·출판사 북촌 출간

출판사 북촌(대표 이호준)이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겸재 정선,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이석우 지음, 북촌) 책을 출간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진경산수화라는 독특한 화풍 덕분에, 그림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작품을 대부분 단번에 알아본다.

독창적이라고 해서 모두 다 인정받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겸재의 작품은 그만큼 예술성과 독창성을 함께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특별한 시선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역사와 미술을 함께 보아온 저자 이석우 교수는, 겸재가 당시 첨단문물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관상감의 천문학 겸교수로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로 그 위치에서 겸재가 서양 화법을 일부 수용해 우리 전통 화법에 적용함으로써 진경산수화풍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겸재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가'로 규정하며,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사회에서 서양화법의 영향을 우리식으로 재창출한 국제적 감각을 지닌 선구적 화가로 보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 국가 간 기술교류와 학제(學際) 간 소통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우리 시대에, 당대의 문화 흐름을 자기 식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낸 겸재의 문화형성력·창조적 대응·개별적 예술혼에 주목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 겸재는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으로 조선 미술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며 동아시아 예술의 중심이었던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사대부 출신으로 화원이 된 그는 숙종 대부터 영조 대까지 관상감의 천문학 겸교수를 시작으로 사헌부 감찰, 의금부 도사를 거쳤고 양천현령으로 있으면서 한강의 수려한 경관을 화폭에 담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국보 제216호 '인왕제색'과 국보 제217호 '금강전도'를 그린 것만 봐도, 이공계 전문가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한 맞춤형 인재로 손색이 없다. 영조가 겸재에게 양천현령과 청하현감을 맡긴 것은 그로 하여금 조선의 비경을 그리게 하려 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화가로서 겸재는 최고의 반열에 든 사람이었다. 하지만 겸재의 작품에는 선비다운 품격과 위엄이 있으며, 올곧음과 여유가 저절로 배어난다. 그의 그림을 단순히 기법이나 준법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독서여가'나 '인곡유거', '경복궁' 등에서 보여 준 선비다운 삶과 역사인식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겸재 정선이 아끼고 사랑한 주제들과 그의 역동적인 삶을 함께 그려내면서, 자연산수·인물·화훼영모에 이르기까지 수십 장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4부 16장으로 담아냈다.

이 책을 읽으며 겸재와 함께 경복궁·서촌·광화문을 거쳐 한강과 금강산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에 유유자적 거하는 즐거움, 선비답게 고요함과 벗하는 법 등에 대해 배우고 느끼며 생각하게 된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가 선비의 혼과 자연과의 일체감을 하나로 담아 붓으로 그려낸 조선의 모습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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