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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슬프고 우스운 이야기 가득한 포항 거리…다양한 이야기 복원하면 인간답게 산다는 느낌 받을 것

김윤규 한동대학교 교수 등록일 2016년03월07일 21시21분  
▲ 김윤규 한동대학교 교수
남의 나라를 다니다 보면, 참 특별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거리의 예술가들이다. 공연장이나 소박한 무대조차도 없이, 그들은 그냥 길거리에서 자기들의 예술을 즐긴다. 때로는 아무도 없고, 많아야 열 명 미만의 관중을 앞에 두고도, 그들의 창작은 진지하고 청중은 행복하다. 그냥 조용조용히, 하고 싶은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즉흥적 무언극을 하기도 한다. 참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화가 좀 도입되었다. 주로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청년들이 비슷한 활동을 하는 것을 자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는 포항에는 그런 길거리 문화가 너무 없다. 포항의 거리들은 그저 바쁘기만 하다. 누구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할 일없이 어정거리거나 느릿느릿 산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어쩌다 길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들이 있지만, 대부분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그 목적을 위해 동원된 경우가 많다. 자발적이고 발랄한 청년들의 활동을 보고 싶다.

포항의 거리에는 이야기가 부족하다. 거리마다 전통적인 이름이 있고, 각각 전설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포항에는 그게 부족하다. 불리는 지명들도 오거리, 육거리, 오광장 등 건조한 이름들이고 지금 지어진 도로명 주소들을 보아도 참으로 삭막하다. 원래 포항은 이렇게 이야기가 빈약한가.

아니다. 분명히 아니다. 포항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가끔 안타깝기도 한 이야기들이 포항의 길에 담겨 있다. 읍면지역은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시가지에도 학산과 탑산과 수도산 아래 칠성천과 개울들이 나루끝까지 흐르던 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 많은 지혜이야기, 열녀이야기, 효자이야기, 우스개이야기들이 우리 포항의 삶터를 덮고 있다. 그렇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모르고 있는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포항의 이 재미있고 슬기로운 이야기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다 정리하고 구성해서 문화를 만들었더라면 포항은 어디보다 풍부한 이야기 거리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거리에 이야기를 입히는 일이다. 여기는 왕국을 지키는 해군만호가 있던 곳, 여기는 어머니의 시린 발을 염려한 효자의 돌다리가 있던 곳, 여기는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여인이 섰던 곳, 혹은 하다못해 여기는 어부들의 어막이 있던 곳이라는 이야기라도 복원해야 한다.

이제는 포항이 문화도시가 되어야 한다. 포항은 산업도시로 크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포항은 문화융성에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 포항의 문화적 변모를 위해 문화재단이라도 설립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포항시와 문화인과 포항시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인문적 향기가 나는 포항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항의 거리에 이야기가 복원되어야 한다. 우리가 날마다 걷는 거리에, 그 재미있고 슬기로운 이야기들이 살아난다면 우리는 포항의 거리를 걸으며 여기 살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초등학생도 귀여운 바이올린을 들고 거리에서 연주하고, 중년들도 한번쯤 거리공연을 해보는 포항. 잠시 멈춰서 듣고 박수를 치면서 우리는 좀 더 인간답게 산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나라의 거리 예술을 부러워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시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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