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69편의 시 책으로 엮어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한국국토정보공사'인 옛 '지적공사'에서 청춘을 바쳤던 문경의 채만희(사진) 시인이 시를 공부한지 만 10년 만에 69편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그리운 금천錦川'이라는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문경시 산양면 금천(錦川)변 현리, 인천 채(蔡)씨 집성촌에서 1952년 태어나 이곳에서 성장한 채 시인은 폴대를 잡고, 문경의 산천을 안 가본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이 분야 꽃이라 할 수 있는 지사장까지 올랐다.

다 올라간 산 정상에 섰던 채 시인은 어느 날 갑자기 이 정상에서 내려오면 무얼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가 2006년 '대구문학' 구석본 시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 안에 발아(發芽)를 꿈꾸던 시심(詩心)을 세상에 밀어올리기 시작하면서 2009년 측량계를 떠났고, 바로 시인이 됐다.

'대구문학'에 '담쟁이'외 1편이 신인상에 당선 된 것.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10년부터는 문경문협 회장까지 맡는 저력을 보였다.

문경은 우리나라 지역문단 중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러면서 채 시인은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해 내듯이 점점 시의 성숙도를 높여갔다.

지금은 문경예총 수석부회장. 그 자리 값을 하느라고 이번에 시집을 낸 것.

이 시집의 시 69편은 새로운 발견들로 가득하다.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소재들, 흔히 볼 수 있으나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채 시인은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하고, 이를 시어(詩語)로 풀어냈다.

구석본 시인은 "채만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그리운 금천錦川'은 풍자와 해학의 정신으로 되어 있으며, 그는 이 풍자와 해학의 정신으로 현대인의 탐욕과 이기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너와 나, 즉,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그리운 금천錦川'을 제시해놓고 있다"고 발문에 섰다.

고성환 작가는 "채만희 시인은 선대부터 문명이 높은 집안의 후손으로, 그의 피 속에 분명히 그 인자가 들어 있고, 그것이 지금까지 숨겨 있다가 표출됐다"며 "우리나라 국문 최초소설인 '설공찬전'의 채수 선생, 현리 앞 주암정(舟巖亭)의 주인공인 채익하 선생 등 문경의 정신을 한 줄기 잡고 있는 집안의 후예다운 모습이 이 시집에 거득하다"고 말했다.

이 시집은 도서출판 지혜에서 냈으며, 값 9천원. 유명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다음은 이 시집의 첫 머리에 나오고, 시인으로 등단했던 작품 '담쟁이' 전문이다.



담쟁이



세상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절벽이다

얼마나 메마르고 단단한지

끝없이 잇대어 쌓은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담장

혼신의 힘으로 막막한 담장을 붙들

고 있다

담장이 물렁해지도록

악착같이 달라붙어

여리고 여린 손 되짚어 이파리 흔들며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기는데 이골 난 몸 하나로

벅찬 숨 몰아쉬며

크고 단단한 걸 손아귀에 쥐는 것이다

욕망의 붉은 줄기 뻗어

눈, 비, 바람에 맞서 주먹 쥐며

높고 푸르게 오르고 오르다가

절벽의 끄트머리 어디쯤

거친 숨결, 지친생의 기록을

담장보다 더 단단한 점자(點字)로 남

기고

가물가물 메마르는 것이다
황진호 기자
황진호 기자 hjh@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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