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문화·복지 등 지역사회 발전에 큰 족적

▲ 고 황대봉 대아가족 명예회장.
지난해 3월 23일(음력 2월 4일) 별세한 고 황대봉 대아가족 명예회장의 1주기 추모식이 12일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선영에서 열린다.

고 황대봉 명예회장은 30세가 되던 지난 1967년 시내버스회사인 포항버스를 설립, 당시만 해도 열악하기 그지 없었던 포항지역 대중교통의 새 장을 열었다. 이후 황 명예회장은 포항과 울릉도를 연결하는 고속여객선 사업에 뛰어들어 연간 5만명에 불과하던 울릉도 관광객을 단숨에 20만명대로 늘리는 등 해운과 금융, 건설,관광레저, 문화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해 15개의 관계사를 둔 대아그룹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과 중국간 국교가 수립되기 전인 지난 1990년 한중합작여객선사인 진천훼리를 창업한 뒤 1991년 12월 24일 한국 인천과 중국 진천을 잇는 여객 및 화물항로를 개척,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에 일익을 담당하는 족적을 남겼다. 또한 1985년부터 1992년까지 8년간 12·13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포항-서울간 항공노선을 여는 등 지역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지역 경제발전측면에서도 지난 1970년대 갈대밭으로 이뤄져 있던 현 죽도시장일대에 대한 확장사업을 펼쳐 현재 부지면적 약 14만 8천760㎡, 점포수 약 1천200개에 달하는 동해안 최대재래시장으로 성장시키는 선구자적 역할을 맡았다.

이같은 업적들을 남기며 탄탄한 기반을 다진 황대봉 명예회장은 지난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지역사회 발전과 인재육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황명예회장이 펼쳐온 대부분의 지역사회공헌사업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으면서 별세하는 날까지 향토발전향한 마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별세하기 전 유족들에게 '장례를 크게 치르면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니 조촐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지역과 사회를 향한 모범을 보였다.

이제 황대봉 명예회장 1주기를 맞아 생전 지역발전을 위해 남긴 족적을 둘러본다.


▲ 1986년 상대동에 건립한 영암도서관. 지금은 포항시에 기증, 포항시립 영암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육영사업

△세명고등학교 설립

평소 지역내 수많은 인재들이 외지로 유출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황 명예회장은 1980년들어 사업이 기반을 잡게 되자 가장 먼저 육영사업에 눈을 돌렸다.

이를 위해 지난 1983년 학교법인 영암학원을 설립한 뒤 포항시 남구 대잠동 2만3천100㎡에 연건평 1만2천870㎡의 학교시설을 갖춘 세명고등학교(남·여 각 18학급)를 준공, 1985년 개교했다.

이같은 규모는 일반 고교 2개교와 맞먹는 규모로, 올해 29회 졸업생까지 남자 6천952명, 여자 7천880명 등 1만4천832명의 인재를 배출해 냈다.

특히 교실이외 체육관과 기숙사, 학생식당 등을 갖춰 포항 뿐만 아니라 울진과 영덕 등 경북동해안지역 학생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춰 포항 교육의 질적·양적 성장을 이끌었다.
▲ 황 명예회장은 1985년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영암장학회를 설립, 장학사업을 펼쳤다.

△영암장학재단 설립

학교설립과 함께 이뤄진 또하나의 육영사업은 바로 영암장학회 설립이다.

황 명예회장은 1985년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영암장학회를 설립, 학업성적이 우수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선발해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장학사업을 펼쳤다.

이같은 장학재단 출연규모는 1985년 당시 경북 도내 최대규모로, 지금까지 1천300여명의 지역 고교생 및 대학생들에게 장학혜택을 줘 전국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인재로 성장시켰다.

△영암도서관 건립

이외에 지난 1986년 포항시 남구 상대동 대지 3천20㎡, 연면적 1천701㎡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352석 규모의 열람석을 갖춘 영암도서관을 건립, 포항시에 기증했다.

이 도서관은 현 포항시립 영암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1999년 사재 7억원을 들여 호미곶에 연오랑 세오녀상을 건립, 포항시에 기증했다.


◇지역사회 발전사업

△죽도시장 확장사업

경북동해안 최대 재래시장이자 수산물 거래 메카인 포항죽도시장 개발에 황 명예회장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도시장은 6·25전쟁이 끝난 이후 시장기능을 하기 시작한 뒤 1969년 죽도시장번영회가 설립되고 1971년 개설됐다.

하지만 포스코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발전으로 죽도시장 확장 필요성이 제기되자 황대봉 명예회장이 직접 서울에서 구획정리사업 전문가를 초빙해 개발방안을 마련했다.

무려 6년간에 걸친 노력끝에 1977년 당시로는 초현대식 상가형시장인 죽도시장을 건설, 전국 3대 재래시장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물론 전국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포스텍 부지확보 해결

황명예회장은 국내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인 포스텍 설립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 1986년 포스텍 신축을 위한 부지확보 과정에서 이주민간 보상협의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자 대학측이 황명예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이주민들은 현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황 명예회장 소유부지로의 이주를 요구했고, 도움요청을 받은 황 명예회장은 흔쾌히 조성원가에 제공함으로써 포스텍이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줬다.

△송도백사장 복원

포항이 고향이자 송도와 죽도동 일대에서 자랐던 황명예회장은 2000년대들어 명사십리를 자랑하던 송도해수욕장 복원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황명예회장은 비슷한 시기 추진되는 포항시 신청사 건립문제와 송도백사장 복원문제에 대해 강력한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해 고향을 떠나는 결단까지 내렸다.

이후 포항시 신청사는 당초 계획대로 현 위치에 건립됐지만 해양수산부가 송도백사장 복원에 대한 필요성을 확인하면서 사업추진에 들어갔다.

이 당시 황명예회장은 단순한 백사장 복원만으로는 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며 미국 하와이에서 성공한 잠제(수중제방)설치 방안까지 제안해 현재 해양수산부가 추진중인 잠제설치사업으로 이어졌다.

△오거리 시민의 탑 건립

포항 오거리는 포항과 포스코 발전의 상징적 장소다.

1970년대 이전 오거리 일대는 구 도심지역의 외곽지였으나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개발되기 시작해 포항 교통중심지로 떠올랐다.

황 명예회장은 포항을 상징하고, 포스코와 함께 지역발전을 염원하는 뜻을 담아 1974년 오거리 중심에 상징탑을 건립해 포항발전과 함께 왔다.

그러나 이 상징탑은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교통혼잡이 가중되자 철거돼 아쉬움이 있다.

△동빈대교 설계변경 건의

지난 1990년대말 포항시는 동빈동과 송도동 일대 교통대책의 일환으로 동빈큰다리를 건설키로 하고 설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포항시가 동빈항을 드나드는 어선출입을 위해 승개교(들어올리는 다리)로 설계한 사실을 안 황 명예회장은 '이렇게 건설될 경우 막대한 건설비용은 물론 건설후 관리비용마저 적지 않은 데다 승개교로 인해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게 된다'며 설계변경을 요구, 지금의 아치형 교량으로 변경시켰다.

동빈큰다리는 현재 관광명소 부활을 꿈꾸고 있는 송도동과 동빈동을 연결하는 주도로 역할과 함께 동빈부두 수변시설의 중심에 있다.

△한민족 해맞이 축제 유치

올해 1월 1일 제18회를 맞았던 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제는 지난 1999년 1월 1일 황명예회장이 창업한 경북일보에 의해 첫 행사가 열렸다.

21세기를 눈앞에 뒀던 당시 정부가 새천년을 맞는 2000년 1월 1일 한민족해맞이축제가 강원도 정동진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접한 황 명예회장은 당시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을 방문해 호미곶이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어 당시 정장식 포항시장에게도 이같은 사실을 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호미곶 새천년 해맞이 국가행사로 지정받아 15억원의 국비예산을 받아 호미곶 광장을 조성했다.

이렇게 조성된 호미곶광장은 동서화합과 민족상생을 의미하는 상생의 손을 비롯 새천년기념관, 호미곶 등대 및 국립등대박물관과 함께 사계절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문화 및 복지사업

△연오랑 세오녀 연구사업

황명예회장은 성공한 향토사업가이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보다 지역 문화창달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해맞이 고장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연오랑 세오녀에 대한 남다른 노력과 관심을 쏟았다.

먼저 지난 1999년 사재 7억원을 들여 해맞이고장의 시발점이 호미곶에 연오랑 세오녀상을 건립, 포항시에 기증했다.

이 연오랑 세오녀상은 2000년 호미곶광장이 한민족해맞이 국가축전장으로 지정되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 호미곶 광장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 누구나 반드시 거쳐가며 지역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황명예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2009년 연오랑 세오녀 연구소를 개소하고, 삼국유사속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설화가 실존인물이었을 확증하기 위한 다각적인 연구활동를 펼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매년 1회 국제세미나와 워크샵을 갖는 한편 연오랑 세오녀가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일본 이즈모시와의 문화교류를 위한 다각적인 활동을 가져왔다.

△노인복지회관 건립

황명예회장은 지난 1986년 영암도서관을 설립하면서 같은 부지내에 660㎡규모의 노인복지회관도 함께 건립해 포항시에 기증함으로써 지역 어르신들의 사회적·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등 노인복지증진을 초석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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