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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노(老)치원 교사' 박경숙씨

"봉사는 내 운명"…어르신들 위한 일이라면 언제 어디든 OK

하경미 기자 jingmei@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3월20일 22시33분  
▲ 박경숙(53·포항시 남구보건소 구룡포 보건지소 주무관)씨.
지난 2일 점심시간을 갓 넘긴 시각 포항시 남구보건소 구룡포 보건지소에 20여명의 할머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이들이 보건지소를 찾은 것은 '우리 마을 예쁜 치매 쉼터' 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은 할머니들은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박경숙(53·포항시 남구보건소 구룡포 보건지소 주무관)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박씨는 할머니들의 기다림을 알기나 하듯 오후 2시쯤 자신이 준비한 과일 그림이 그려진 색칠용 종이와 크레파스를 잔뜩 챙겨 나타났다.

할머니들에게 꼼꼼하게 색칠 공부 재료를 나눠준 박씨는 오늘 할 내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칠하기를 권했다.

할머니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알록달록하게 색을 입혀 점차 완성돼 가는 그림을 보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곧이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각자의 그림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그녀를 불러댔다.

'이거는 우예 하노(어떻게 하는데)?', '무슨 색을 칠하꼬(해야 하지)?'

한 사람이 부르면 곧이어 또 다른 사람이 애타게 그녀를 불러 몸이 여러 개라도 부족해 보였다.

"우리 보건지소에 오는 할머니들 나이는 평균 80세로 이 가운데 95세 할머니도 있다"면서 "나이는 많지만 다들 어린아이 같아 잠시 한눈팔면 다칠 수도 있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며 곁에서 내내 지켜봤다.

그림 공부가 끝나자 시작된 윷놀이 프로그램에서 상대편의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선 듯 간혹 큰 소리가 오갔지만 다행히 싸움은 없었다.

일명 '구룡포 보건지소 노치원' 생활을 즐겁게 하려고 그녀가 정한 규칙 때문이었다.

그녀는 매일 할머니들에게 다 같은 처지이니 보건지소에 오면 남에 대한 험담과 싸움을 하는 대신 맛있는 것은 항상 나눠 먹고 서로 도와줄 것을 강조해 왔다.

이때부터 할머니들 간에 험담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각자 주전부리를 사와 나눠 먹는 등 돈독한 정을 쌓으며 가족같이 지낼 수 있게 됐다.

▲ 박경숙씨가 지난 2일 구룡포 보건지소에서 할머니들과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남에게 베푸는 삶은 내 운명

포항시 북구 흥해읍이 고향인 박경숙씨는 넉넉하지 않지만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던 평범한 농사꾼 집의 1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의 집에서 일해준 뒤 품삯을 못 받아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고, 도리어 집에 뭐라도 있으면 남에게 다 퍼줘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친구가 있으면 자기 도시락을 꼭 손에 쥐여줘야 마음이 편했다.

이런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백의 천사나 아픈 환자를 돕는 거창한 포부는 아니었지만 오로지 남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자격증을 딴 뒤 1983년 당시 영일군보건소로 실습을 나왔던 그녀는 주사실·민원실 등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은 뒤 이듬해 한 종합병원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85년 운명처럼 영일군보건소에 임시직으로 입사한 뒤 청하 보건지소에 첫 발령을 받아 일하던 중 결혼을 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1990년 정직원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정직원으로 바뀌자마자 구룡포 보건지소에 있던 직원이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가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고, 그녀는 임신 상태로 몸이 무거웠음에도 불구하고 오천읍에 사는 자신이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다며 선뜻 가겠다고 나섰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가까이 사는 내가 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면서 "내 몸 편하기보다 어차피 내 일인 데다 나랏밥 먹는 처지에 어디든 상관없었다"는 게 자원한 이유였다.



△성심을 다해 정성을 쏟다 보니 어르신 팬도 생겨나

남이 꺼리는 험지만 찾아서 다니는 그녀의 성격 탓에 보건소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구룡포뿐 아니라 동해·호미곶 등 보건지소만 8곳을 돌았다.

특히 구룡포 보건지소는 17년 동안 일을 하다 보니 그녀가 다른 지소로 옮겨 다닐 때마다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오는 어르신 팬이 생길 정도였다.

지난해 다시 구룡포로 복귀했을 때는 할머니들이 버선발로 그녀를 맞아 주는 등 타지로 떠났던 자식이 돌아온 것마냥 기뻐해 줬다.

그녀에게 할머니 팬들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어르신 관련 사업이나 정책이 있으면 꼭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어디든 발품을 팔아 찾아다녔고, 길이 멀어 교육을 받으러 오기 힘든 어르신이 있으면 직접 차량을 운전해 모시러 가는 등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았던 덕분이다.

이영하(80·구룡포읍) 할머니는 "우리 노인네들이 즐겁게 놀 수 있게 해준다"며 "4~5년 전에 구룡포 지소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정말 눈물 났는데 다시 돌아와서 살맛 난다"고 웃음꽃을 피웠다.
▲ 박경숙씨가 지난 2일 구룡포 보건지소에서 윷놀이하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녀가 어르신에게 성심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도움이 한몫했다.

'모르는 사람한테 잘하기보다 당신을 필요로 하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면 그게 바로 봉사'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은 물론 노치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교재를 만들 때 대학생 딸과 공익근무 중인 아들 역시 앞장서서 도와준 덕분이었다.

더욱이 딸은 지난 겨울 방학 때 구룡포 보건지소에 나와 할머니들 심부름뿐 아니라 말동무가 되는 등 여러 가지 궂은일을 도맡았다.

"자식들에게 항상 '내가 가진 것을 줄여서 베푸는 인생을 살아라'고 가르친다"는 그녀의 꿈은 참 소박하다.

그녀는 현직에 있을 때 내 주변의 어르신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퇴직 후 남편과 함께 반찬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내 일이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어르신들이 많은 것을 나눠주고 베풀어 줬기에 잘하려고 애썼을 뿐"이라고 밝게 웃는 그녀가 바로 노치원의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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