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아무도 받아가지 않는 '이상한 배상금'

한우 농가 모임인 전국한우협회 경북도지회 사무실 서랍에는 3억9천830여만원이 든 통장이 있다.

농가들이 도축을 맡긴 한우고기 17.6t을 빼돌린 직원을 둔 축산물도매법인(신흥산업)이 내놓은 피해자 배상금이다.

지난 18일 항소심에서 주범 3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은 1원도 받지 않고 있다.

신흥산업 관계자는 "한우협회의 요구로 거액을 내놨는데 아무도 안받아가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신흥산업은 지난 8일 3억9천830만원을 계좌에 넣어 한우협회 경북도지회에 맡겼다. 보상을 요구한 단체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우협회는 이 돈을 피해 농가에 나눠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이상한 배상금의 사연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흥산업은 대구·경북지역 축산농가로부터 의뢰받은 소를 도축해 경매로 고기를 팔고, 농가에서 수수료를 받아 운영하는 도매법인이다.

노조위원장인 장모(52)씨 등 6명은 2009년 1월 2일부터 2015년 5월 11일까지 980차례에 걸쳐 양지살과 안창살 17.642t을 빼돌렸다.

지난해 7월 제보를 받은 대구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에 나서 장씨 등 3명을 구속했다.

경찰이 추산한 피해자는 8천700여명이다. 피해자 대다수는 한우협회 소속 농민이 아니라 농민들에게서 소를 사들여 도축을 맡긴 상인들이다.

그런데도 수사 발표를 접한 한우협회 소속 농민 700여명은 지난해 8월 대구시청 앞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어 법인 해산과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문형재 한우협회 경북도지회장은 "피해를 입은 개별 축산 농가의 수는 미미하지만, 축산인으로서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보상을 요구했던 것"이라고 했다.

장씨 등 직원 6명은 지난해 10월 2일 1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법원은 피해액을 3억9천830여만원(도매가 기준)이라고 밝혔다. 경찰 발표는 소매가 기준으로 피해금액이 5억6천만원이었다. 신흥산업은 3억9천830여만원을 배상금으로 정했다.

서영덕 신흥산업 총무부장은 "2019년 3월로 예정된 법인 운영기간을 내년 3월로 앞당겨 해산해야 하고, 4억원에 가까운 배상금도 내놓은 만큼 우리로서는 도리를 다했다"고 했다.

조용철 한우협회 경북도지회 사무국장은 "농가별로 얼마나 고기를 떼였는지 증명하기가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보관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범 장씨의 변론을 맡은 변호사는 "도둑질 한 사람만 있고 정확한 피해금액을 아는 피해자는 없어서 법원에 공탁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피해 보상을 줄기차게 요구한 한우협회 경북도지회가 이 돈을 피해 농민들에게 나눠주지 못하면 배상금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민법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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