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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의 역설

세상사는 양면성이 있다 수출되는 헌 옷은 저렴하지만 해당국 의류 산업 해치는 주범

이상식 시인 등록일 2016년04월13일 22시46분  
페이스북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 서른을 갓 넘긴 그가 딸의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언했을 때, 세계의 청춘들은 열광했다. 언감생심 쉽지 않은 고뇌의 결단이자 대리만족이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한 미국조차도 근로자의 12% 정도만 육아휴직을 누린다. 하물며 한국 같은 나라는 오죽하랴.

올 초 업무로 돌아온 그는 페북에 띄운 사진으로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육아 휴가 마치고 복귀 첫날, 무엇을 입어야 할까'라는 제하로 옷장을 소개한 모습. 디자인이 똑같은 회색 반팔 티셔츠 아홉 장과 모자가 달린 진회색 후드 집업 여섯 벌이 전부다. 선택이란 고민이 민망할 정도의 단출한 진열.

예전에 상류층의 옷장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군대 복무 시절, 모시는 상관이 공관에서 사저로 이사를 하였다. 지금은 재벌가로 시집간, 당시 여대생인 자녀의 물품을 옮길 때였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학생 신분인 탓도 있으나 브랜드 명품이 안 보여 의아했다. 많지 않은 캐주얼 옷들은 하나같이 골목길 상가에서 구입한 중저가품. 예상을 벗어난 목도에 고개를 갸우뚱했던 옛일이 떠오른다.

절친한 기업가 한 분도 그렇다. 자수성가한 재력가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소하다. 그러면서 당신을 낳은 고향과 당신이 부를 일군 포항에 거금을 쾌척한다.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자선 사업을 위해서다. 평소의 차림과는 판이한 인품.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선심을 베푼다. 그분을 보면서 스스로 되뇐다. 사람을 외모로 재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뜨거운 욕망으로 혹은 설레는 가슴으로 선택한 새 옷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랜다. 헌 옷을 버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유행의 변화와 인체의 변형. 여기에 하나를 추가한다면 생활의 변신이 아닐까. 특히 은퇴자가 되노라면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의복이 잡다하다. 일상적 삶이 바뀌기 때문이다.

지난달 낡은 옷가지를 버리면서 그 재활용이 궁금했다. 마침 당해 분야에 종사하는 지인이 있기에 알아봤다. 아파트 등지에서 수거한 의류는 가격을 산정코자 압축기로 무게를 측정한다. 다음엔 품목별 색상별 계절별 따위로 세세히 분류하는데, 그 가짓수는 무려 수십 종류가 넘는다고 한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의류는 폐기 처분된다. 동복은 필요로 하는 국가가 없어서 대부분 소각한다. 선별이 끝난 옷들은 살균을 위한 세탁 후 컨테이너에 적재하게끔 돼 있으나, 인건비가 비싼 이유로 생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마대 자루에 100㎏ 단위로 포장한다. 치마와 브래지어가 값어치 나간다는 귀띔.

세상사는 양면성이 있다. 동남아와 아프리카로 기부 또는 수출되는 헌 옷은 양질의 저렴한 제품. 하지만 해당국의 의류 산업 발전을 해치는 주범이다. 1970년대 우리의 봉제업을 연상하면 수긍이 갈 것이다. 의류 업종은 자본이 부족하고 저임 노동자가 많은 후진국의 경제 도약에 필수적이다. 헐벗은 나라를 돕는다는 선의가 그들의 미래를 망치는 걸림돌이 된다면, 지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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