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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정직·봉사 정신으로 사회공동체 의식 회복에 주력"

[대구경북 초선국회의원] 곽대훈 당선인(새누리당·대구 달서갑) 인터뷰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4월26일 21시28분  
▲ 곽대훈 국회의원 당선인은 "공동체 의식이 살아나야 현대사회 병폐를 모두 해결할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

지난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제1당을 뺏기는 등 참패했다.

대구에서도 더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무소속 후보 3명이 각각 당선되는 등 지역 민심도 붕괴하는 조짐을 보였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달서갑 곽대훈(새누리) 당선인은 70%에 육박하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달서구청장으로 3선을 지내며 받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선거 이후 곽 당선인은 지역구 이곳저곳을 다니며 당선 인사를 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곽 당선인을 26일 만나 그의 삶과 공직자로서의 신념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난 곽 당선인은 대구 초·중, 경북고를 나온 대구 토박이다.

고려대학에 진학하면서 대구를 떠났다. 이후 대학원 1학년 때인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곽 당선인의 학창시절 꿈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교사를 꿈꿨으나 유가전통을 갖춘 집안 분위기가 나랏일을 하길 원했다.

그도 차차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일을 찾았다. 법대 진학 후 조금은 늦은 대학 3학년 때부터 행정고시 준비에 들어가 2년 만에 합격하는 저력을 보였다.

곽 당선인은 합격 비결에 대해 특별한 비법이 없는 것이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학교 잘 다니면서 대학원 수업을 들었던 게 오히려 고시에 더 도움이 됐으며 특별한 방법을 찾지도 않았다.

학교수업에 집중하고 도서관에서 규칙적으로 공부한 것이 도움됐다는 싱거운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곽 당선인은 "자연스럽게 시험 성적도 좋았다"며 "250명 중에 15~16등쯤 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곽 당선인은 아시안게임을 1년 앞둔 1985년 5월부터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근무했다.

88서울올림픽은 냉전 시대 동·서 양 진영이 참가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그만큼 의미가 큰 대회였으며 곽 당선인은 조직위원회에서 경기운용파트에서 일했다.

종합상황실에서 상황실장으로 근무하면서 13개 종목 경기장을 관리하는 일을 수행한 것이다.

상황실을 지키다 보니 곽 당선인은 대회 기간 중 실제 경기장을 못 가봤다고 웃었다.

효과적인 상황실 관리를 위해 곽 당선인은 군부대 상황실을 찾아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부했다.

처음 부임했을 때 당시 박세직 위원장이 수행비서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곽 당선인은 "박 위원장이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라며 "당시 신혼 시절이라 맞지 않으려고 무단히 노력했다"고 웃었다.

조직위에서 일하며 곽 당선인은 문동후 전 평장동계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과 사수 부사수로 호흡을 맞추며 일을 배웠다.

문 전 부 위원장은 서울올림픽 경기국장,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세계태권도연맹(WTF) 사무총장 등 국내에서 열린 큰 국제대회를 여러번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곽 당선인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고 문 전 부위원장에게 이야기했다.

이때 문 전 부위원장은 제대로 대회를 치러본 사람도 많지 않은 만큼 끝까지 함께 하자고 설득, 곽 당선인은 올림픽까지 치렀다.

곽 당선인은 "그만큼 아시안게임, 올림픽이 힘들었다"며 "입장 순서부터 선수 동선, 자원봉사자 배치 등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자리라서 힘들었지만 성공적인 대회로 끝내 보람을 느꼈다"도 회상했다.

올림픽 이후 곽 당선인은 1989년 2월 대구로 내려왔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공을 인정받아 원하는 부서로 갈 수 있었다. 실제 총리실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 뿌리치고 곽 당선인은 대구로 내려왔다. 고향이 대구고 노모가 계신 고향으로 내려오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때를 놓치면 고향에서 일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대구행을 이끌었다.

곽 당선인은 "파견을 갔다와 승진이 좀 늦어지면서 조금 후회한 적도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심정을 드러냈다.

바로 "열심히 시민을 위해 일했고 금세 승진 늦은 게 회복됐다"며 "후배들에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보상을 받는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곽 당선인은 문희갑 전 시장이 시청 근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상사로 꼽았다. 내무국장을 하면서 만났는데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국가경영을 경험했던 경험이 있어 시야가 넓고 공무원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강조했던 시장으로 기억했다.

문 시장의 스타일 덕분에 곽 당선인은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국내는 물론 외국 사례까지 꼼꼼하게 찾아보는 습관을 길렀다.

구청장 시절 가장 잘 했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곽 당선인은 경제 활성화든지 도로 공사 등이 아닌 공동체 의식 회복을 꼽았다.

우선 2009년도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란 슬로건으로 도서관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했다.

그 결과 달서구는 구립도서관 4개, 마을단위 공립, 사립 작은 도서관 52개 등 지역에서 가장 많은 70개의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곽 당선인은 도서관이 이제 단순히 책을 보고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고 정의했다.

바로 공동체를 회복하는 장소로 꼽았다. 이웃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공간이며 종합 정보교류 및 이웃과 소통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도서관과 함께 곽 당선인은 자원봉사가 확대를 이야기했다.

2006년 처음 구청장 취임할 당시 자원봉사자가 1만 700여명 등록돼 있었다.

곽 당선인은 "60만 인구의 달서구에서 그 정도 자원봉사자 숫자는 창피한 일"이라며 "임기 동안 자원봉사자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해 이번 퇴임할 때 15만여명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는 공동체의식을 회복하는 첫 시작이라는 것이 곽 당선인의 주관이다. 이웃을 돌보는 등 사회공동체 의식이 회복돼야 더욱 나은 사회가 될수 있다고 믿고 있다.

결국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데 구청장으로 주력했던 것 같다고 곽 당선인은 정리했다.

곽 당선인은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는 어느정도 수준은 돼 있음에도 시민들은 불행하다고 느낀다"며 "공동체 의식이 살아나야 현대사회 병폐를 모두 해결할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직자로서의 기본 덕목으로 곽 당선인은 청렴·정직·봉사를 꼽았다. 또 이를 바탕으로 항상 유념하며 지키려고 노력한 신념을 소개했다.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다.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사소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등 이다.

곽대훈 당선인은 "이러한 신념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고민하는 공직자가 되겠다"고 모든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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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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