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단 '종군문학' 태동지·저항 문학 산실 최초 전문문예교육기관 열어 인재 양성에 힘써 접근성 우수한 사통팔달 편리한 교통망 구축돼

▲ 사진 왼쪽부터 이상규 대외협력위원장, 김주환 경북문인협회장, 이병국 경북예총회장, 이상희 공동위원장, 류형우 대구예총회장.
▲ 장호병 대구문인협회장.
대구유치위원회 발족

대구·경북지역 지도층과 문화예술인들이 문향의 도시 대구에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를 위해 똘똘 뭉쳤다.

대구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최적지임을 강조하면서 100만인 서명 운동에 돌입하는 한편 유치위원회도 출범했다.

대구 건립의 당위성도 충분하다. 고대는 물론 근·현대 문학사적 역사성과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예술인들 유치위원회 공식 출범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를 위해 대구·경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지난 21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유치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대구·경북의 지도층과 문화예술인들이 공동으로 국립한국문학관의 대구유치에 힘을 합치기로 한 것.

유치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은 이상희 전 내무부장관과 신상철 전 대구교육감이 맡았다. 상임위원장은 류형우 대구예총회장, 장호병 대구문인협회장, 이병국 경북예총회장, 김주환 경북문인협회장이 하기로 했다.

이날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개최되는 출범식에서는 대구경북 문인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가 경주에서 창작됐고, 일제강점기에 민족시인 이상화, 이육사 등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문인들을 배출한 문향의 도시이며, 6·25 전쟁당시에 전국의 문인들의 주활동 무대임을 알렸다.

국립 한국문학관이 왜 대구에 건립돼야 하는지 당위성은 명약관화하다. 지금도 그 흔적이 향촌동에 고스란히 남아있고, 종군기자단의 '종군문학' 태동지가 대구였다.

대구문인협회는 지난 4월 1일 지역문인, 예술인, 교수, 언론인, 정치인 등 500여 명으로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 3월말부터 2·28기념공원 등 도심에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출마자를 대상으로 선거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상희 전 장관은 "근·현대 문학사적 역사성과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대구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고,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성이 우수한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망 구축되어 대구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의 최적지이다"면서 "시도민들의 뜨거운 유치열기를 더해 국립한국문학관을 반드시 유치할 수 있도록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국립 한국문학관, 왜 대구인가-장호병(대구문인협회장)

지난 22일 오후 4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지역 문인과 문화예술인,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를 위한 포럼이 열렸다. '대구문학의 역사성과 그 미래' 등이 주제였다.

이날 포럼 진행을 맡은 장호병 유치위원회 상임위원장이자 대구문인협회장은 대구유치의 당위성을 밝혔다.

무엇보다도 한국문학의 발원지이자 근현대문학의 요람으로서의 역사성이라는 점이다. 신라 향가는 물론이려니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인정받고 있는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의 산실이 경주 금오산이었다. 그리고 대구는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등 항일저항문학의 산실이었다. 광복을 맞은 1945년 10월에는 전국 최초로 죽순시인구락부가 설립되고, 1946년 4월엔 월간 '아동'(발행인 이영식), 5월엔 '죽순'(발행인 이윤수), 6월에는 '새싹'(발행인 최해태)이 창간됐다.

1948년 3월 14일엔 달성공원에 이상화의 시비가 세워졌다. 한국 최초의 시비이다. 1949년 2월에는 이효상 '산', 이설주 '들국화', 신동집 '대낮', 4인시집 '청과집'(황윤섭, 윤계현, 김성도, 박목월) 등의 7인 합동 출판기념회가 경복장에서 열렸는데 이 역시 해방 후 최초였다. 대구·경북이 학문의 고장으로 일제 암흑기에도 대구에는 문학활동의 저변이 두터웠다는 점과 출판의 고장임을 입증한다. 대구에는 추적(1246년∼1317년)의 명심보감 유일본인 인흥재 사본 목판이 전하고 있다.

이러한 문인들의 활동은 1950년 6·25 한국동란이 발발해 53년 휴전 협정 때까지 대구는 명실상부한 한국 문학의 수도가 되기에 충분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全國文化團體總聯合會)는 중앙문총구국대(대장 김광섭)로 개편돼 대구로 남하해 와 경북지대와 합류, 젊은 학도병들의 전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전선시첩'을 제작하고 '8·15기념행사'를 한일극장에서 갖는 등 선무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조지훈, 구상, 서정주, 이한직, 박두진, 유주현, 김동리, 박목월, 황순원, 전숙희, 박계주, 안수길, 김송, 임긍재, 박화목, 이정호, 서정태, 조흔파, 김윤성, 유치환, 오영수, 홍영의 등 실로 많은 문인들이 참여한 문총구국대는 육군종군작가단, 해군종군작가단, 공군종군문인단 등으로 나뉘어 활동했다.

대구 출신의 상화(1901년∼1943년)와 고월(1900년∼1929년)에서 한 자씩을 딴 '상고예술학원'이 6·25전쟁 당시 피란도시 대구에 설립됐다. 당대 최고의 교수진을 갖춘 국내 최초의 문학예술 전문교육기관으로 90명의 예술가가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소설가 박종화, 김기진, 김말봉, 김동리, 장덕조, 최정희, 정비석, 최상덕, 최인욱, 박영준, 김영수, 김동사, 시인 이은상, 오상순, 유치환, 구상,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양명문, 김달진, 박귀송, 백기만, 이효상, 이호우, 이설주, 이윤수가 뜻을 더했다. 국문학자 양주동, 이숭녕, 김사엽, 왕학수 평론가 최재서 아동문학가 마해송 극작가 유치진, 연극인 이해랑 수필가 전숙희 음악가 김동진, 김성태 화가 서동진, 박명조 등 문학을 넘어 여러 예술 분야의 인사가 참여했다.



△선언문 발표

대구경북 문인 등 100여 명은 유치위원회 출범식에서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유치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경북은 신라 향가문학과 설화문학을 비롯한 한국 고전문학의 중심이요 발원지이다.

◇대구는 현대문학의 창조적 진원지이다.

개화기 소설가 현진건, 백신애, 장덕조, 김동리와 시인 이상화, 이장희, 이육사, 이병각, 오일도, 박목월, 조지훈, 유치환, 시조시인 이호우, 문학평론가 이원조, 백기만, 김문집, 아동문학가 윤복진, 김성도, 이응창 희곡작가 김영보 등이 지역 현대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하였으며, 이는 곧 한국 현대문학의 뿌리가 되었다.

◇대구는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화, 이육사, 이장희와 소설가 현진건 등이 민족의 자존을 깨운 저항문학의 산실이었다.

◇한국동란기에는 대구의 문인들이 피란 문인들과 '문총구국대', '육군종군작가단' '공군종군문인단'을 결성하여 '전선시첩', '전선문학', '창공', '공군순보' 등을 발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의 와중에도 최초로 전문문예교육기관인 '상고예술학원'을 열어 인재 양성에 힘써 왔다.

◇대구·경북에는 죽순, 영남시조문학회, 영남수필, 대구아동문학회 등 장르별 전국 최초로 결성된 동인들이 있으며 김원일, 김주영, 이문열, 정호승, 유안진, 등 장안의 지가를 들썩이게 하는 문사들을 가장 많이 배출했으며, 서울을 제외하면 문인이 가장 많은 도시이자 문학인구의 저변이 가장 두텁다.

◇대구는 타지역 문인들과의 친밀도가 가장 두텁고 접근성이 탁월하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두 시간 이내, 전국 어느 곳에서 출발하더라도 하루걸음에 다녀갈 수 있다.

◇훌륭한 입지와 야심찬 지원방안이 이미 마련돼 있다. 한국문학관은 대구의 출판산업지원센터와 출판산업단지 등과 연계함으로써 전국의 젊은 인재들을 불러 모아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전형적인 문화산업기지이자 테마관광지로 거듭날 것이다. 기존문화산업 기반들과의 상호작용으로 한국문학관은 조기 궤도 진입과 정착에 성공할 수 있다.
김현목 기자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대구 구·군청, 교육청, 스포츠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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