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흐르면서 각색되는 기억 감정은 세월 속에 사라지지 않아 사랑하는 가족에 감정 어필하길

공리 주연의 영화 '5일의 마중'에는 기억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아내, 그리고 그녀를 헌신적으로 옆에서 지키는 남편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절, 고교 교사 펑안위 (공리 역)의 남편 루옌스(진도명 역)는 반동 분자로 몰려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는데, 펑안위는 남편을 도망시키려다 철없는 딸의 밀고로 그 시도가 좌절이 되면서 가슴 아픈 이별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해 기억장애를 앓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펑안위는 점점 더 많은 기억들을 잃어가게 되고, 오로지 관심은 남편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매월 5일에 그가 붙잡혀 갔던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가는 것으로 모아지게 된다. 그 와중에 혁명이 끝나고 루옌스도 몇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정작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 하고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면서 막무가내로 몰아내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 후 루옌스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아내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녀의 기억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여러 모로 애를 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둘은 늙어가고,펑안위는 남편에 대한 기억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다.

기억의 한계 속에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이다. 기억과 감정, 이 둘은 보통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분리되는 경우를 임상 현장에서는 가끔 목격할 때가 있다. 얼마 전 한 어르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그 분은 젊어서 친구를 좋아해서 가정을 잘 돌보지 못 하고 술이며 놀음 등으로 부인의 속을 많이 썩였다고 한다. 결혼 생활 수십년 동안 제대로 아내 위하는 법을 모르다가 나이 들어 먼저 세상을 뜨는 친구들도 있다 보니 70대의 외로운 처지가 되어서야 자기 곁에 늘 있어주는 조강지처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 몇 년 간은 지난 날들을 후회하며 부인을 위해 잘 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부인에게 치매가 오면서부터 생겼다. 한동안 부인에게 공을 들여서인지 두 분 사이가 많이 좋아지고 부인의 화병도 많이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부인이 최근의 일들은 점점 기억을 잃어 가는 대신에, 과거의 기억을 떠 올리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의 좋은 기억들은 간과되고, 더 오래 전에 저지른 잘못들을 들먹이며 부인이 화를 내고 비난 섞인 원망과 함께 욕을 퍼붓곤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분노와 공격의 강도가 점점 심해져서 지금은 부인이 걱정되어 같이 있고 싶은데도 부인의 곁에는 잘 갈 수가 없다고 하신다.

감정은 기억보다 강하다. 기억은 취약해서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각색이 되기도 하지만, 감정은 비교적 일관성이 있으면서 오래간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오늘 내가 내뱉는 말 한 마디, 보여주는 행동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쓰는 게 좋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 기억의 저장소에 감정의 색채를 덧칠해 가며 차곡차곡 쌓이다가 언젠가는 감정의 큰 에너지로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간관계는 가족뿐이다. 가정의 달인 5월, 우리의 기억이 온전한 이때에 다시 한 번 감정에 어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가족 사랑을 실천해 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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