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처리 없이 버리면 치명적 물질 처리장소는 많은 시간·노력 필요 사용후 핵연료 관리 특별법 시급

"국내 원전 부지 내 사용 후 핵연료 저장조 포화로 원전가동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최근 한국원자력학회와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가 정부와 국회에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기본계획과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발표한 성명서 일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24기에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대책 마련의 시급함을 지적한 것이다. 4기의 중수로와 2기의 경수로 원전을 운영하는 월성원자력본부를 들어서면 콘크리트로 건설된 원통형 모양의 '캐니스터'와 직육면체 모양의 '맥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이 시설이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핵연료를 보관하는 건식저장소이다. 사용 후 핵연료는 우라늄과 플루트늄 등 자원적 가치가 있는 물질이 포함돼 있지만, 재처리 없이 그냥 버리면 고준위 폐기물로 치명적인 물질이다.

월성원전은 발전소에서 발전을 마친 사용 후 핵연료를 습식저장조에서 6년간 저장하면서 핵연료봉 온도를 떨어뜨린 후 건식저장소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보관할 수는 없다. 저장용량이 49만9천632다발인 저장소에 현재 41만여 다발이 저장돼 있어 저장률이 83%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저장소를 고밀도로 추가 설치한다 해도 중수로 원전 특성상 사용 후 핵연료 발생이 많아, 2019년이면 저장시설에 사용 후 핵연료가 가득 쌓이게 된다. 이처럼 쌓아둔 사용 후 핵연료가 저장시설에 가득 쌓이는 포화상태에 이르면 더 이상 원전을 가동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발전소도 마찬가지다. 고리, 한울, 한빛 발전소의 건식저장소의 저장률도 올 1분기 기준으로 각각 78%, 67%, 64%에 다다랐다. 사용 후 핵연료를 최종적으로 처분할 장소가 없어 원전 내에 쌓아 두면서, 포화가 임박해 오고 있다. 지난해 가동한 경주 방폐장 처럼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를 묻을 수 있는 방폐장 건설 등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방식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론화 준비작업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2013년 10월 30일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현재 운영을 마친 이 위원회는 사용후 핵연료의 운반과 저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선행돼야 하며, 중간저장시설을 지을 장소를 늦어도 2020년에 선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중·저준위 방폐장만해도 2005년 경주로 최종 선정되기까지 19년의 세월이 걸린데다 가동까지는 30년 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처분 후 10만 년 정도가 지나야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소 선정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용후 핵연료는 먼 후대까지 오랜 기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위험물질인 만큼 안전한 관리와 처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행이 중요하다.

늦었지만 포화가 임박한 원전의 저장시설부터 확충하고, 특별법 제정과 사용 후 핵연료 관리정책을 지금이라도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

방폐장 특별법에 따라 경주에는 사용 후 핵연료의 관련시설이 들어 올 수 없지만, 원전지역 주민으로서 더욱 높은 관심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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