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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40년 나이차 극복한 단짝 포항대 새내기 강대희·이주현씨

"많은 나이-신체적 장애는 친구사이 걸림돌 아니야"

하경미 기자 jingmei@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5월15일 21시41분  
▲ 40년 나이 차이를 초월하고 우정을 쌓고 있는 포항대 사회복지과 새내기 강대희(오른쪽)·이주현씨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마음을 나누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지난 1990년대 영화가 세상 전부인 소년 토토와 낡은 마을 극장의 영사기사였던 알프레도의 애틋한 우정을 그린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몇 차례 더 재개봉이 될 만큼 감동을 줬던 이 영화를 보면서 토토와 알프레도처럼 나이를 넘어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포항대 사회복지과 새내기 중에도 40년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우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캠퍼스 단짝이 있다.

주인공은 대기업에서 퇴직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만학도 강대희(62)씨와 뇌병변 2급으로 장애를 앓고 있지만 누구보다 긍정적인 청년 이주현(21)씨다.

편안한 노년 대신 알찬 인생을 위해 도전에 나선 강대희씨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밝게 생활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이주현씨는 늦은 나이와 신체적 장애라는 핸디캡을 보듬어 주면서 서로에게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병변 장애

"처음에 꿈인가 싶었다"며 장애를 얻게 된 그때를 회상하던 이주현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포항에서 태어난 이씨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경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울산으로 이사해 중학교를 다녔다.

긍정적인 데다 밝은 성격이던 이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받던 중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급히 양호실로 옮겨졌지만 몇 시간이 흘러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자 그제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그의 머리는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고 입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쓰러진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던 그에게 부모님은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몇 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인지 장애 등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쓰러지기 며칠 전부터 두통이 있긴 했어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 실수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믿기 어려운 현실이 그냥 짜증스러웠고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만 자꾸 맴돌았다"고 털어놨다.

병원 측의 권유 등으로 외갓집이 있는 포항의 한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재활 치료를 2년간 받게 됐다.

특히 오른쪽 다리를 유연하게 하기 위한 재활 치료를 많이 했는데 아픔이 극에 달해 부끄러움도 잊은 채 병원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이 뇌압으로 2차 봉합 수술을 받았고, 왼쪽 팔은 마비가 된 데다 오른쪽 눈마저 실명됐다.

이후 석회질 제거를 위해 오른쪽 다리 수술을 받았고, 5~6개월간 대구의 재활병원에 머물며 치료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와 약 1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거나 자는 등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폐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불현듯이 '학업은 마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중·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염원에 따라 검정고시에 도전, 2014년과 지난해 각각 중·고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이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집 밖을 나설 용기가 생긴 그는 북구 양덕동에 있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을 다니게 됐다.

하지만 병원이나 집과는 달리 바깥세상은 휠체어로 갈 수 없는 곳이 너무나 많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그는 병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회복지사들의 따뜻함을 잊을 수 없었고, 성치 않는 몸이지만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희망을 실천하기 위해 포항대 사회복지과 수시 전형에 도전, 당당히 합격증을 받았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장애인을 도울 수는 없지만, 다른 방면에서 돕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면서 "어차피 장애를 얻었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자는 심경으로 대학에 들어왔다"고 미소를 띠었다.

이어 "탁월한(?) 선택 덕분에 동기생으로 강대희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 계속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대희씨는 올해 첫 사회복지과 수업 시간에 일찍 온 덕분에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당당한 이씨에게 이끌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 포항대 사회복지과 새내기 강대희·이주현씨가 캠퍼스에서 활짝 웃고 있다.



△36년 포스코맨 강대희씨, 다시 도전을 시작하다

"마지막 직장이었던 포스코 휴먼스 사장을 맡았던 경험이 이주현이라는 친구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강대희씨는 충남 공주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면 포항은 자신의 청춘을 바친 제2의 고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1975년 서울의 모 대학 법학과에 들어간 그는 군 전역후 여느 법대생처럼 두차례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신 뒤 같은 과 친구를 따라 취업하기로 했고, 첫 원서를 낸 포스코에 합격해 1981년 본사 인사업무 분야로 첫 발령을 받았다.

이후 2006년 당시 포스코가 인수한 포스코특수강(현 세아창원특수강) 상무를 거쳐 2010년 포스코켐텍 상임감사 및 전무, 2016년 포스코휴먼스 사장을 끝으로 약 36년간의 포스코맨 생활을 접었다.

앞만 보고 걸어오다 어느덧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중년이 된 그는 포스코켐텍 임원 시절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발을 들였다.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묵직한 자리의 무게감도 있었지만 평소 남을 돕겠다는 마음만 컸지 실천이 어려워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을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조금씩 봉사의 참맛을 알아가던 즈음인 지난 2014년 우리나라 대기업 중 처음으로 포항을 비롯해 광양 등 4개 지역에 작업장을 갖춘 장애인표준사업장인 포스코휴먼스 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가 처음 포스코휴먼스에 들어왔던 2014년 당시 전체 직원 376명 가운데 장애인은 54%였다.

15개 국가 인정 장애 유형중 14가지 유형의 장애인들이 새로운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 자리하고 있었다.

"매일 장애를 가진 직원 한 사람 한사람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니 모두가 다 훌륭한 사람이더라"며 "장애를 가졌지만 일하는 것 자체에 만족하면서 고마워하더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일상이 감사하다'는 직원들을 보면서 그는 퇴직 후 전문적으로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문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지난 3월 퇴직하기 전 가족들에게 대학 진학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밝히며 양해를 구한 뒤 바로 자신이 다닐 지역 대학을 찾아다녔고 포항대 사회복지과를 선택해 입학하게 됐다.

차량이 없는 그는 자신이 사는 남구 이동에서 1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또 몇 분을 더 걸어서 강의실에 도착하지만, 그 마저도 새롭고 즐거웠다.

특히 사회복지과 주간반은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요즘 '동요' 등 보육 교육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와 함께 이주현씨처럼 40년 이상 나이 차가 나는 동기생에게 직장에서 인사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충분히 발휘해 취업 상담이나 면접팁 등을 알려주면서 친분을 쌓고 있다.

젊은 학생들과 친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주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하고 있는 봉사활동을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도 내비쳤다.

강대희씨는 "내가 먼저 동기생에게 다가가 말도 걸고 적극적으로 다가서니 주현이 같은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며 "젊은이들이 말하는 일명 '개저씨'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상대의 말을 잘 듣고 먼저 말을 걸어주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어 "졸업한 후 내가 배운 전문 지식으로 남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작은 꿈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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