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각 내려놓고 불경서 부처님의 가르침 찾아야"

▲ 회주 이각스님.
-도각사는 어떤 곳인지 소개를 부탁합니다.

△출가자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때문에 출가자는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 가르침이 그대로 담겨 있는 책을 불경이라 하니 모든 출가자는 바로 불경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경은 진리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일체 수행법의 근간이 되며 동시에 수행의 결과를 증명해주는 비서(秘書)이지 복을 빌고 죄를 참회하는데 쓰이는 주문이 아닙니다.

도각사는 불경을 올바로 해석 번역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통 수행법을 따라 재현합니다.

이곳에서의 수행이란 공양하고 호미질하고, 하품하고, 달리는 가운데서도 선정을 벗어날 수 없는 아직까지는 없었던 논리와 그에 대한 이해로써 탕탕한 행위를 우선합니다.

삶의 주체인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실체'를 탐구해 '나의 삶'을 선하고 정의로운 용기로 평안히 만들고 싶은 자라면 누구나 함께 수행할 수 있는 도량입니다.

-스님의 저서인 '불멸'에서 기존의 불경번역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들었습니다.

△진리에는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시대와 장소,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면 진정한 이치라 할 수 없습니다. 진리란 종교는 물론이요 작게는 개인의 심리, 크게는 정신과 물질의 관계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인 '생사의 이치'로부터 '삶의 실제적 이치'등 과학도 아직 들여다보지 못한 모든 내용이 담겨있는 성전이지만 현재 한글로 번역된 불경을 읽고서는 그 심오한 가르침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기존의 번역서들이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기 위한 의역인지는 모르겠으나 쉽게 설명한 것이 아니라 혹 잘못 설명한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예를 든다면.

△불교의 근간이 되는 가르침이 바로 무아(無我)입니다.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나는 흐르지 않듯이 있음(有)을 바라보는 나는 없음(無)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없애고 무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본래 보이지 않는 정신이 나였음을 깨닫게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불교는 '무아를 이뤄야 한다'고 설명하는 듯 한데 실제로 본래 내가 없음을 경전대로 깨달았다면 어찌 다시 '무아'를 이루라고 하겠습니까?

불교란 모든 존재가 이미 부처였음을 깨우쳐주고 본래 선해 죄를 지을수 없음을 가리켜(指) '죄'란 '나와 나의 죄가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에 사무치게 하는 것이지 중생을 참회시켜 미래의 부처로 만드는 가르침은 결코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생각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라면 누구나 자기의 본 모습을 공부해야 합니다.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토끼가 물속에서 살며 물고기를 먹으려 애를 쓰다가 결국은 병들어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불경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스승을 찾아 따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가진 저울로 계량하기에 앞서 먼저 저울을 고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젊은 수행자들이 많아져 세상의 빛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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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 기자
김성대 기자 sdkim@kyongbuk.com

상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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