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상의 정치가' 故 김재순 가난한 젊은이에 꿈·희망 줘 교양잡지 '샘터'와 영원할 것

1993년 토사구팽(兎死拘烹)이란 말을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린 노정객 우암(友巖) 김재순(金在淳) 전 국회의장(93)이 17일 유명을 달리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그가 YS가 추진한 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에서 부정축재에 휩싸여 사퇴 압력을 받고 '토사구팽'이란 말을 남기고 정계를 은퇴했었다. 이후 그가 한 이 말은 당시 정치권을 비롯해 관계·경제계까지 우리사회에 회자됐다.

토사구팽이란 말은 지금으로부터 2천200여년전 한신(韓信)이 한고조 유방(劉邦)이 초나라 항우(項羽)를 항복시키고 황제 자리에 오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으나 모함으로 오랏줄에 묶여 유방에게 이끌려가는 수레안에서 읊은 말이다.

"꾀 많은 토끼를 잡고 나면 좋은 사냥개가 삶아 먹히고(狡兎死良拘烹·교토사양구팽) /나는 새가 없으면 좋은 활은 창고에서 썩게 마련이며(飛鳥盡良弓藏·비조진양궁장)/적국을 항복시키고 나면 모사에 능한 신하를 죽이는 법이니(敵國破謀臣亡·적국파모신망)/이제 천하가 안정되었으니 나 역시 팽을 당하는구나(天下已定 我固當烹·천하이정 아고당팽)"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후일 유방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후에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유방과 한신의 관계를 기록하면서 '토사구팽'이라고 기록했다.

고대 중국을 비롯해 우리의 조선시대나 작금의 우리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도 쓸모가 있을 때는 이용을 하다가 가치가 없으면 냉정하게 버리는 비정한 사례들을 숱하게 볼 수가 있다.

'풍상의 정치가'로도 불리는 7선 의원을 지낸 우암은 후일 "YS를 용서했느냐"는 물음에 "한순간이 아까운 인생인데 가슴에 응어리를 지니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인생을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겠는냐"는 현답(賢答)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1970년에 월간 교양지 샘터를 출간하면서 "샘터는 문화입니다. 이 땅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의 산업현장으로 대이동을 하던 시절, 샘터는 이들에게 고향의 샘물처럼 시원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고 헤어져 사는 삶들이 한 곳에 모여 목을 축이며 자신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샘터를 만들었습니다"고 발간사를 썼다.

그가 국회의원 시절 기능올림픽대회에 선발된 기능공들과 만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 가 원망스럽다"는 말을 듣고 이들에게 조금의 용기라도 북돋워 주자는 생각으로 샘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샘터의 기고자 가운데는 수필가 피천득, 법정 스님, 최인호, 이해인 수녀 등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거나 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연재되거나 많이 실렸다.

창간때나 지금이나 샘터의 가격은 한 권에 2천50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돈 없는 젊은이들에게 교양과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한 조치였다.

이제 그는 갔으나 정치인 '김재순'보다는 못살고 어려웠던 과거에 가난한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샘터'를 제공해 준 그의 족적이 교양잡지 샘터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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