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대 변호사
"강간 범죄자와 부딪히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까?"라는 질문에 미국 여성들이 답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전이라서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변에 차가 주차돼 있다면 차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강간범죄자로 하여금 강간을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돼 있던 것이 기억난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비명이나 소리를 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비명이나 소리는 범죄자를 흥분하게 하고 범죄자가 소리를 막기 위해 피해자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실제 내가 맡았던 강간사건 중에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자 불행하게도 강간범이 피해자 입을 때려 피해자의 치아를 여러 개 부러뜨린 경우가 있었다.

범죄자와 대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놀랍게도 강간범을 설득해 강간피해를 입지 않은 피해자들도 있다. 내가 맡았던 사건 중에도 피해자들이 강간범에게 몸을 씻겠다든지 생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든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성관계를 가지자고 제안한다든지 등의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끌다가 욕실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심지어 옷을 입고 나갈 터니 집 밖에서 만나자고 한 뒤 경찰에 신고하여 강간범을 체포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범죄자와 부딪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하면 범죄자와 부딪히지 않을까. 대부분 범죄자는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보다는 범죄를 준비하고 범행을 용이하게 저지를 대상과 기회를 찾는다. 따라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시간과 장소는 피하여야 한다. 상대적으로 밤에 긴장을 떨어지는 유흥가에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불행하게도 최근 서울 강남역 부근의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전혀 면식이 없는 30대 남성 정신질환자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현장 부근 CCTV에는 이 남성이 남녀공용 화장실 부근 계단을 서성거리다가 화장실 쪽으로 사라지고 피해여성이 계단을 올라와 여성화장실 쪽으로 들어가고 몇 분 후 남성이 계단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가해 남성은 화장실에 한참 동안 있다가 첫 여성이 들어오자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현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피해여성은 전혀 면식이 없는 정신질환자에 의해 묻지마 살인범죄를 당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피해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고 피해여성을 추모했다.

묻지마 범죄는 특히 예측이 어렵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나 생명이나 신체훼손을 목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묻지마 범죄 중에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적지 않은데다가 걸어 다니는 정신질환자가 전체 인구의 1%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행위자도 다른 범죄자들과 마찬가지로 범행을 용이하게 저지르기 위해 범행 시간과 장소, 범행 대상을 선택한다.

범죄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범죄에 용이한 시간과 장소를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범죄가 일어날 만한 시간과 장소에 놓이게 되면 일행과 떨어져 혼자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 최대한 주변을 살피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낯선 이의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을 받으면 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 특히 화장실은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이다. 늦은 밤 시간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그러나 출구가 하나밖에 없어 도망치기 어려운 화장실과 같은 장소에 혼자 가거나 머무르지 않는 것이 범죄피해자가 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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