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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17.안동 장씨 장흥효 경당종택

공경과 삼가 대대로 대물림…'음식디미방' 장계향의 친정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5월22일 17시35분  
▲ 경당종택.

경당종택은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264번지 서후면사무소에서 봉정사 쪽으로 조금 들어가다가 오른쪽에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퇴계 선생의 학통을 계승한 경당 장흥효(1564-1633)의 종택이다. 장흥효는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아버지이다. 이 집이 장계향의 친정인 것이다.

안동 장씨의 시조는 충헌공 장정필 선생이다. 장정필 선생은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당나라에서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넘어 왔고, 고려 태조 13년에 김선평, 권행 등과 군사를 일으켜 견훤군을 격파했다고 한다. 그 공을 높이 사 고려 태조는 '태사'라는 벼슬을 주고 '식읍'을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경당 선생은 벼슬길을 굳게 거부한 채 오직 학문과 자기 수양의 길에만 정진했다. 경당은 부득이한 이유로 과거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었지만, 답안을 작성한 뒤 이름을 쓰지 않고 시험장을 나선 사실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그의 평생 이력은 유림의 인정을 받아 사후에 유림의 제사를 모실 수 있게 됐다. 지금도 후손들은 유림 불천위 제사를 정성껏 모시고 있다.

▲ 종택 뒷편의 정원.

유가의 주요 실천덕목의 하나인 경(敬)을 자신의 호로까지 택해 쓴 것은 경당의 학문적인 지향과 의지가 그만큼 강했음을 알 수 있다. '경(敬)'은 이 집 가문의 휘장으로 대대로 대물림하고 있다.

퇴계 문하의 대표적인 학자요 정치가였던 한강 정구 등은 경당 선생을 유일(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지방에 있는 유능한 인재)로 추천해 참봉 직을 내렸으나 은명을 받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 때문에 경당은 한평생 미관말직일망정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완전한 학자요, 처사적인 삶을 완성할 수 있었다.

경당에게는 정부인 안동 장씨로 추앙되는 여성상의 표상인 장계향이 있었다. 당시 무남독녀였던 정부인은 부친의 명으로 제자인 재령 이씨 석계 이시명의 아내가 된다.

장계향은 10남매를 훌륭하게 키워 3남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정부인 안동장씨'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토리죽으로 굶주린 백성의 배를 채워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녀가 70대 초반에 쓴 '음식디미방'의 146가지 조리법은 전통음식의 교과서로 통해 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에 실렸다.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에는 장계향의 유적을 기리는 유적비가 1989년 세워졌다. 또 장계향이 남긴 유적과 자취를 기리기 위해 음식체험과 예절을 배우는 '정부인 안동장씨 기념관'이 건립됐다.

▲ 11대 종손 장석진씨.
경당종택에는 장흥효의 11대 종손 장석진(79)씨와 종부 권순(78) 여사가 살고 있다.

종손은 안동농고를 졸업한 뒤 단국대 수학과에 진학해 3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대구시청 공무원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종가를 지켜야 한다는 부친의 뜻 에 따라 31세에 고향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부친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문중 일을 보겠다는 생각이었으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농업에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닌 종손은 지인의 소개로 안동 임하댄 건설과 관련한 건설, 토목, 포장 등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만다.

한때 종손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병마와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종손은 주위의 우려를 말끔히 씻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후 의욕적으로 문중과 종사를 이끌고 있다.

그 첫 번째 사업이 선대로부터 경영하고자 했으나 결말을 보지 못했던 경당 선생 문집 국역사업과 경당 선생 유허비 건립이었는데, 이들 사업은 경당선생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모두 결실을 맺었다. 지난 2007년 금계리 광풍정(光風亭)에서 거행된 유허비제막식에는 전국 각처의 후손 등 귀빈 750여 명이 운집해 1억 원이 넘는 모금도 이뤄졌다.

종손은 조경에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 수억 원을 들여도 못할 종가 조경 일체를 종손의 아이디어와 땀과 부단한 인내로 완성했다고 한다.

경당종택을 방문했을 때 종손은 '경당 장흥효 선생의 삶과 사유'라는 주제로 치러진 '안동처사의 삶' 현장학술강연회 뒷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사)유교문화보존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강연회에는 경북대 철학과 임종진 교수의 주제발표 등이 열려, 200여 명이 넘게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고 종손은 전했다.

종부 권순 여사도 종택 이곳 저곳에 자란 잡풀을 뽑고 있었다. 종부는 최근 허리 수술을 2번 받았다고 했다. 불편한 몸에 허리 보호대까지 차고 정원을 돌보고 있었다.

종부 권순 여사의 친정은 영양 청기의 산택재 권태시 선생의 종가다. 종부는 종가에서 태어나 종가로 시집왔으니 평생을 종가에서 산 사람이다.

때문에 종부의 음식솜씨는 더욱 유명하다. 특히 안동칼국수는 옛 맛과 정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도 유가의 전통음식을 맛보기 위해 각처에서 이곳을 찾고 있다.

종부의 '팥잎국'은 종손이 가장 좋아하는 국이기도 하다. 종손은 13년 전 갑상선암에 걸렸다. 부친이 돌아가시던 해 그는 고통이 너무 심해 생을 포기하려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종부의 지극정성이 그를 살렸다. 종손은 지금도 팥잎국을 즐겨 먹는다. 팥잎국은 말린 팥잎을 살짝 삶아 콩가루에 묻힌 후 다시마와 멸치로 우린 물에 넣고 끓인 국이다.

안동의 종가 음식을 이야기할 때 경당 종가 음식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서를 지은 정부인 안동 장씨의 친정이며 우리 음식 문화의 본류 중의 한 집이기 때문이다.

종손 장석진 씨는 "음식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닌 데 빨리 여건이 되어서 자식들이 물려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차종손은 자녀 교육문제로 안동시내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경당종택을 찾는 체험객들에게 그럴듯한 음식체험장을 갖는 게 종손의 작은 바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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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 오종명 기자
  • 안동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