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야산에 묻고 처가 들러 안부인사까지

부처님 오신 날인 5월 14일 오전. 10년 경력의 법인택시 운전기사 유모(55)씨는 평소처럼 운전대를 잡았다.

상냥한 미소로 승객을 맞았지만, 이내 손님맞이를 접고 지인과 술을 잔뜩 마셨다.

그 시각 대구 서구 유씨의 빌라 거실에는 18년째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 A(53)씨의 주검이 썩고 있었다.

이날 새벽 1시30분께로 돌아가 봤다.

술에 취해 귀가한 아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면서 잠들어 있던 유씨의 몸을 손으로 쿡쿡 찔렀다.

성격 차이로 갈등을 빚던 아내의 모습에 화난 유씨는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경찰 관계자는 "맞벌이로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유씨는 자녀가 없는데다 성격 차이로 아내와 불화를 겪었다"고 전했다.

아내를 살해한 유씨는 택시를 몰고 태연히 거리로 나섰다. 저녁에는 아내의 주검 옆에서 잠들었다.

다음날에도 출퇴근길 시민들을 실어 날랐다. 유씨가 승객들을 납치하거나 해칠 수도 있었다. 묻지마 범죄의 가능성이 충분했다.

범행 다음날인 15일 유씨의 엽기 행각이 이어졌다. 아내의 시신을 화장실로 옮긴 뒤 다리, 몸통 등을 토막 냈다.

170㎝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인 유씨가 키 155㎝에 다소 통통한 아내의 주검을 한 번에 수습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튿날 자신의 스포티지 승용차에 토막 낸 시신을 실어 고향인 경북 의성군의 한 야산으로 향했다.

16일 정오께 아내의 주검을 묻은 유씨는 오후 3시께 군위군 처가에 들러 장인과 장모에게 안부인사도 했다.

그 시각 요양보호사인 아내가 근무하는 요양병원 직원이 실종신고를 했고, 유씨는 지구대 경찰관에게 "아내가 14일 싸운 뒤 가출했다"고 둘러댔다.

17일에도 택시 운전대를 잡은 유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수사망이 좁혀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씨는 18일 "진작 이혼했으면 이런 일도 없을 것이다. 후회 된다"는 내용을 적은 7장짜리 유서와 수면제 100알을 가방에 담아 집을 나섰고, 구미와 상주, 포항, 울산을 떠돌았다.

친형에게는 "아내를 죽였다. 죽으러 간다"고 털어놨고, 유씨의 친형은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유씨가 19일 오전 울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연녀로 추정되는 B씨와 공중전화로 통화한 사실을 파악, 낮 12시25분께 경산 행 버스에 타고 있던 유씨를 체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목졸림)로 확인됐고, 구타나 방어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는 바람에 유족 조사를 따로 하지 않아 부부간의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면서도 "오랜 갈등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유씨가 정신질환을 앓거나 마약 등을 복용한 기록은 일절 없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23일 유씨를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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