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40년의 건국 역사 최초의 원주민 인디언부터 독립 기념 자유의 여신상까지

해외여행은 사전 학습이 요구된다. 이국의 문물은 정서적 공감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맞닥뜨리는 이채로움은 지식으로 무장한 이해력의 바탕 위에서 깊숙이 다가온다. 설레는 맘으로 떠났으나 귀국한 직후, 여로에 절은 심신만 가득한 건 울림을 함께하지 못해서다.

미국은 두 얼굴의 야누스 같은 나라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정의로운가 싶으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미국의 역사서를 읽노라면 그런 심증은 확신으로 차오른다. 전쟁과 정복, 그리고 인종 차별의 과거사로 얼룩진 강대국. 하지만 우리는 미국을 이해해야 한다. 군사적 맹방이자 긴밀한 관계로 엮였기에 그러하다.

지난번 미국 여행을 앞두고 여러 권의 서적을 탐독했다. 재즈에 관한 책을 포함하면 10권이 넘는 듯하다. '다시 읽는 미국사'· '미국의 역사를 훔친 영화의 인문학'·'미국은 드라마다'·'시간의 노상에서'·'미국, 어디까지 알고 있니'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야만과 문명으로 점철된 그 민낯을 더듬는다.

흑인 민중 음악의 한스런 결정체인 재즈. '길모퉁이 재즈 카페'·'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피상적으로나마 재즈를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변방 문화를 깨우치는 아이콘이나 재즈 클럽에 들어가 보진 못했다.

가장 관심 깊게 정독한 도서는 미국의 초등학교 역사교과서이다. 상세한 기술은 기대하기 어려우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은 빠짐없이 언급되지 않겠는가. 미국은 국정교과서 또는 검정교과서라는 개념이 없다. 당연히 교과서의 종류는 엄청나다. 상당수 학교에서 채택하는 정평 있는 교과서도 존재한다.

버지니아 대학의 허쉬 교수가 편찬한 초등생 교과서도 그 가운데 하나다. 눈길이 가는 단원이 많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까 궁금했고, 한국전쟁 등 한반도와 관련된 부분은 어떤 식으로 알렸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미국의 초등생 역사책은 우리의 단군신화와 같은 전설은 없다. 불과 240년의 일천한 건국 역사. 첫 페이지는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에 대한 서술로 시작된다. 이어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영국의 식민지 건설, 마지막으로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묘사하면서 끝맺는다.

뉴욕항 허드슨 강 리버티 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 미국 독립 100주년 축하 우호의 표시로서 프랑스가 기증했다. 왼손에 독립선언서, 오른손에 횃불을 들었다. 프랑스에서 만들어 분해한 다음 배에 실어 운반하여 재조립됐다니, 이민자의 국가에 어울리는 역정인 듯하다. 그녀 또한 이민자였으니 이심전심이었으리.

브루클린 다리 근처에서 출발하는 페리에 승선하여 관망하는 자유의 여신상. 푸른 옷자락을 휘날리는 그 장엄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미국 여정의 절정을 체험한 듯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거대한 나무뿌리가 고색창연한 전탑을 휘감는 앙코르 와트의 흥분이랄까. 고대와 현대라는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엇비슷한 희열감. 뱃전의 '아이 러브 뉴욕'이란 노래가 흥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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