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 집대성한 민족문화의 바다

▲ 장인의 손길 지난해 11월 27일 오후 경북 군위군 조선시대 체험시설인 '사라온 이야기 마을'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각수가 삼국유사 목판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

일연선사의 행적은 고려의 민지공(閔漬公)이 쓴 보각국사비명(普覺國師碑銘)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 비명은 문장도 명문이거니와 동진의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긴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중국의 사신이 와서 이 비명의 탁본을 구해 간 일이 많다. 일연선사를 찬하는 시가 비명의 뒷부분에 붙어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오직 선사께서 출세하심은 본래 이타(利他)를 위함이라. 학문은 내교(內敎:불교)와 외교(外敎:유학 기타 세상의 글)를 다했고 기변(機變)은 만 가지 차별에 잘 응하셨네. 제자백가를 통탈해 마쳐 현묘한 이치를 다 찾아내었다네. 갖가지 의문을 풀어내는 것이 마치 거울이 비추듯 하였다네. 선림(禪林)에서는 호랑이가 소리치고 교해(敎海)에서는 용이 우는 것 같았네.

여기서 선림은 선종이고 교해는 교종을 뜻한다. 원래 불교는 두 가지다. 부처님이 입을 열어 말씀으로 전한 것은 교(敎)라 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으신 마음을 바로 전한 것을 선(禪)이라 한다. 그러니까 불언(佛言)은 교, 불심(佛心)은 선이 되어 실제 불교의 역사에 선과 교는 두 갈래로 발전하였다. 이를 민지는 선림과 교해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선교 양종과 제자백가에 달통하고 거울처럼 밝은 지혜를 갖춘 선사께서 당신의 전공이 아닌 세간의 이야기를 붓으로 적은 기록물이 5권 2책으로 전해오는 삼국유사다.

삼국유사는 왕력, 기이(紀異) 상하(上下), 흥법, 탑상,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 피은(避隱), 효선(孝善)의 9편으로 이루어졌는데, 민족문화사적 가치가 무진장하다. 단군 할아버지를 비롯한 해모수, 해부루, 박혁거세, 고주몽, 비류, 온조, 석탈해, 김알지, 수로왕, 연오랑 세오녀, 대조영 등 개국 시조급 들의 이야기는 물론, 단 한두 편에 불과하면서도 그 자체 거대한 장르가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진흥왕이 풍월도를 좋아하였고 미시랑이 풍월도를 일으켰다는 기록만으로도 최치원이 말한 풍류도가 재해석될 수 있다. 그뿐이랴! 아도화상의 어머니 고도녕이 일러주는 가섭연좌석 등 전불(前佛)시대의 일곱 가람터는 석가모니불이 인도에서 탄생하기 전에 신라 땅에 가섭불이 머물면서 교화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니, 엄청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소재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이 아주 오래 전에 성립하였는데, 1천명의 불타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 중 첫 번째가 비바시불이고 여섯 번째가 가섭불, 일곱 번째가 석가모니불, 그리고 여덟 번 째가 미륵불이다.

삼국유사에는 고도녕를 비롯해 선도산 성모, 아유타국 공주 황옥, 수로부인, 선화공주, 도화녀, 여종 욱면 등 여성 주인공도 많아 여기에서도 재미있는 각본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호랑이와 혼인한 김현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또한 얼마나 신기한 이야기인가. 밀교의 입장에서 보면 밀본, 명랑, 혜통 대사의 신비로운 행적이 얼마나 고맙겠으며, 이광수의 작품 '꿈'의 원형인 조신의 꿈도 독특한 장르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향가는 민족문학과 음악을 풍성 하게 하였으며 '처용'은 처용무, 처용가와 함께 우리의 민속과 음악사에 이채를 더한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무궁무진한 민족문화의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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