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 장인 최삼규 PD, 다시쓰는 동물의 왕국 펴내

▲ 최삼규 PD
"자연은 갑질을 하지 않는다!"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라이온 퀸', 'DMZ는 살아 있다' 등의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한국 자연 다큐멘터리의 장인 최삼규 PD.

야생 동물을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라고는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제작한 수입산 프로그램이 전부였던 시절, 그가 제작한 한국형 자연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뭔가가 있었다.

그는 단지 '먹고 먹히는' 야생의 약육강식이라는 살풍경 대신, 야생 동물의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따뜻한 감동 스토리를 포착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다.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은 그가 꾸준하게 천착해온 자연 다큐멘터리 작업의 연장선이자 최종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그가 오랜 시간 예민하고 끈질긴 관찰을 통해 지켜본 '리얼 동물의 왕국'은 피비린내 풍기는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가 결코 아니었다.

저자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단지 진화론적, 생물학적인 용어일 뿐 자연의 진정한 섭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본 자연은 어떤 동물의 '갑질'도, 그 누구의 잉여와 축적도 허락하지 않는 세계다. 그러므로 치타나 사자 같은 육식동물이 야생의 지배자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산일 수 있다. 누구나 공평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 갈 수 있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돼 있는 세계, '조화와 공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야생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로그램 제작 당시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자연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면서도 재미난 일인지 이야기한다. 아프리카 야생 동물들의 결정적 한 방을 찍기 위해 때론 좌충우돌하고 때론 악전고투하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결국 인간이란 자연 앞에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어쩌면 야생에서 살아가는 수천 수만 종의 동식물들이,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전하는 작지만 귀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시속 112km 속도로 달려가는 치타, 그리고 라이온킹이라고 불리는 백수의 제왕, 사자. 그런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에 무섭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순식간에 사냥에 성공하는 이른바 '약육강식'의 이미지는 야생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하지만 TV 속 영상처럼 진짜 야생의 세계도 과연 그럴까?

오랜 시간 아프리카 야생 동물을 관찰해온 최 PD는 이에 대해 '동물의 왕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사실 TV 영상에 의해 극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실제로 마주한 육식동물은 야생의 주인이나 왕이 아니라고 말한다.

육식동물들도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며(치타의 사냥 성공률은 30% 정도), 때로는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사자 새끼마저 굶어 죽는 일이 야생에는 비일비재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동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치타와 사자, 하이에나 등의 사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자자의 생생한 촬영 스토리를 통해 야생을 지배하는 숨겨진 질서, '갑질'이나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조화와 공존'의 메커니즘을 찾아 나간다. 저자는 생생한 다큐멘터리 촬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고정관념 이면에 있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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