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배합탱크 청소하다 유독가스 발생 2명 숨져 안전수칙 외면한 인재 추정

▲ 지난 1일 원료탱크를 청소하다 근로자 2명이 숨진 경북 고령군 제지공장에서 경찰과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 등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권오항기자 koh@kyongbuk.com
머나먼 이국땅을 찾아 돈을 벌려던 네팔 국적의 한 청년과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던 한 가장이 좁디좁은 공장 내부 원료배합탱크 안에서 가스발생으로 추정되는 질식에 의한 사망한 사건이 발생,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1일 오전 10시께 경북 고령군 개진면 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대창제지 내 원료배합 탱크에서 침전된 슬러지를 청소하러 들어갔던 네팔 국적의 타파(24)씨와 송모(57)씨가 숨졌다. 이들을 구하러 들어갔던 강모(52)씨는 병원에 후송, 의식이 혼미한 가운데 집중치료에 들어간 상태이다.

사건 발생 약 4시간여가 지나서 현장을 찾은 기자는 메케한 냄새를 맡으며 당시의 참혹함을 상상케 했다.

맨 처음 청소를 하기 위해 타파씨가 가로세로 6m, 높이 약 2.6m에 가로 50㎝, 세로 95㎝크기의 입구를 통해 이동용 철제 사다리를 타고 탱크로 내려갔다.

입구에서 지켜보던 작업반장 송씨는 타파씨가 쓰러져 위급함을 인지하고, 급히 구조를 위해 내려갔고, 강씨도 뒤따랐다.

자신의 근무부서가 아니지만 부근에 있던 김달배씨는 다급한 목소리의 구조요청을 듣고, 곧바로 사무실에서 내근 중이던 박지환씨에게 알렸으며, 박씨는 119에 신고했다. 그때 시간은 오전 10시17분. 하지만 송씨와 타파씨는 숨졌고, 강씨는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119가 도착하기 전 김씨는 현장에서 저장조 안에 있던 이들을 살리기 위해 공기 주입구를 통해 공기를 불어넣으며 필사적인 구출을 시도했지만, 2명의 목숨을 살리지는 못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대구지방노동청 서부지청 한 관계자는 탱크 바닥 슬러지에 청소를 위해 물을 분사하면서 슬러지 층의 교반에 의해 용존돼 있던 황화수소가 다량으로 발생, 유해가스 및 산소결핍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사건발생 4시간 정도가 지난 오후 2시25분께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 등의 현장 조사에서 황화수소 잔류양이 약 4ppm 정도로 나타났다. 이는 사고 당시 이들을 살리기 위해 공기를 빼고 주입하는 등의 조치와 함께 많은 시간이 지난 가운데에서도 이 같은 잔류양이 남은 것은 당시 상당한 유독가스가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모든 것을 인재로 밖에 볼 수 없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총 12기의 원료배합탱크가 있고, 이들 탱크의 슬러지 제거를 위한 주기적인 청소 시스템은 구축돼 있지만, 정작 안전을 위한 매뉴얼은 공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을 해야 할 경우 안전 매뉴얼을 제작, 이를 숙지하고 현장에서 실천해야 하지만 취재결과 이들이 안전수칙을 지킨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작업을 시작하기 전과 작업 중에 적정공기 상태가 유지되도록 환기를 해야 하고, 행여 여의치 않을 경우 송기마스크 등 호흡용보호구를 착용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고, 감독도 하지 않은 것.

이날 고령경찰서와 고령소방서, 고령군 그리고 대구지방노동청,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의 관계자들이 현장조사를 벌였다.

고령경찰서 김현희 수사과장은 "정확한 사인 규명과 회사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과실여부 등에 대해 집중 조사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창제지 공장은 지난 2000년 대기배출시설 설치신고 회사로 대기 2종(20~80t미만), 수질 3종(200~700t/일)의 경북도 관리업체이며, 외국인 4명 등 총 21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권오항 기자
권오항 기자 koh@kyongbuk.com

고령, 성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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