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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대구보건학교 육심용 교사

"장애 학생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임무"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6월15일 21시28분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입니다. 자립의 기본은 취업이고 취업을 돕는 것이 제가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교사로 몸 담기 시작하면서부터 육심용 교사(56)는 장애 학생들과 함께했다.

그들이 불편한 것이 무엇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살피는 과정 속에 육 교사는 발명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발명왕으로 불리지만 육 교사는 오히려 장애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사에 가깝다.

지금도 졸업생들의 취업사항을 일일이 챙기며 학생들이 사회에 한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2일 육심용 교사를 대구보건학교에서 만났다.

육심용 교사는 1960년 구미 선산에서 태어났으며 1979년 대학 진학과 함께 대구로 왔다.

사실 육 교사는 처음부터 교직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연과 인연이 만나 지금의 육 교사를 만들었다.

전문대 공예과 졸업 후 1998년 야간대학에서 산업공예를 전공한 그의 이력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한사실업전문대를 다니면서 장애학생들을 봤지만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칠 거리를 아니었다.

군 제대 후 일반회사를 다니던 육 교사와 장애 학생들과의 인연은 1986년 6월 청각장애 학교인 대구영화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육 교사는 "특수교육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영화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큰 느낌이 없었다"며 "학생들을 처음 만난 뒤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전했다.

당시 그는 고용직 현 기술직으로 영화학교에 다니면서 행정보조일부터 청각장애 학생들에 대한 목공지도를 담당했다.

영화학교에서 4년 10개월을 다니면서 실기교사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991년 정식 실기교사로 임용됐다.

육 교사에게 청각장애학생들은 일반 학생과 큰 차이가 없었다. 못 듣고 말을 좀 못하지만 다른 건 일반인들과 같았다. 오히려 집중력은 높았다.

학생들의 집중력에 육 교사는 더욱 더 열정을 쏟아 가르쳤다. 그 결과 육 교사 가르친 학생들은 목공예를 바탕으로 가구공장으로 취업이 이뤄졌다.

매년 9~10월 가구회사에서 직접 학교를 찾아 능력을 보고 데려갔다.

취업은 비교적 잘 이뤄졌지만 이직률이 높았다. 육 교사는 그 원인으로 근무환경이 좋지 못한 것을 꼽았다.

이직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육 교사는 졸업한 학생들까지 관리했으며 이후 취업 관리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2000년 초반부터는 전자쪽에 일자리가 많아졌고 육 교사도 구미 등으로 눈길을 돌렸다.

직접 회사에 찾아가 학생들의 장점을 소개하며 발로 뛰었고 취업이 이뤄진 학생들은 작업환경이 좋다보니 이직률이 떨어졌다.

취업은 물론이고 근무지에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신경쓴 것도 육 교사의 몫이었다.

적응을 돕기 위해 학생들을 연계시켜 취업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육 교사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100여명의 졸업생 명단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다.

육 교사는 "근로자의 날에 만나기도 하지만 졸업한 뒤 2~3년 지나면 연락이 끊기는 졸업생도 있다"며 "내가 해야할 일을 할 뿐 특별할 것은 없다"고 큰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육 교사가 발명으로 유명해진 것은 지난 2011년 대구보건학교 부임 이후다.

보건학교에 처음 왔을 때를 육 교사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육 교사는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했다"며 "갈등도 많았고 잘 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많았던 시기"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결국 그만둘 생각까지 했지만 육 교사는 주변 도움으로 견뎌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런 저런 갈등 속에서도 육 교사는 할일을 찾았다.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어떻게하면 더 나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 결과 보조공학기기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공예장기를 살려 학생들 물품이나 시설을 고치는 것에서 시작했다.

직접 고치면서 더욱 집중하게 됐고 고치는 과정속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좋아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

그의 첫 발명품은 책상에 홈을 판 단순한 작업에서 시작했다. 책상에 홈을 파서 휠체어가 책상에 쉽게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어떻게보면 작은 발견이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책상과의 거리가 좁혀진 학생들의 수업 집중력은 높아졌다.

처음 시작이 이뤄지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다.

이후 전동 흔들의자, 휠체어 및 다용도 보조등받이를 연이어 만들어 학교에 기증했다.

전동 흔들의자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 학생들의 장운동을 도와준다.

휠체어 및 다용도 보조등받이는 승용차 등을 이용할 때 넘어지지 않게 몸을 고정할 수 있는 기구다.

지금까지 20여가지를 발명했으며 육 교사는 수업시간 항상 학생들에게 불편사항을 들으며 새로운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여러 발명을 했지만 육 교사가 획득한 특허는 없다.

여러 절차적인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육 교사는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이 필요한 것을 자신은 만들기만 할 뿐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 동안 만든 것 중에 업체를 찾아가 아이디어를 주는 대신 학생들의 취업을 부탁하는 등 학생들의 자립을 더욱 우선하고 있다.

육 교사는 자신이 아닌 학생이 특허를 받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당당히 말했다.

육심용 교사는 "학생들이 특허를 받으면 자립이 더욱 수월할 수 있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임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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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기자

    • 김현목 기자
  • 대구 구·군청, 교육청, 스포츠 등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