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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20.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강릉 이남 동해안 최고 명당 평해 황씨 2천년 세거지

김형소 기자 khs@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6월19일 22시09분  
▲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위치한 평해황씨 해월종택.
경북 동해안 최북단인 울진의 아름다운 해안선 끝자락에 자리잡은 해월종택 해월헌(海月軒)은 평해 황씨 2천년 세거지다.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인 평해 월송정과 기성 망양정 사이에 위치한 해월헌은 황락(黃洛)을 시조로 한 평해 황씨 3대본이 이곳에서 비롯된다.

해월헌은 현재 경북도 민속 문화재 제 61호로 지정돼 있다.

사당은 종택 정침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불천위 항여일의 위패와 4대조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종택의 구조는 내외를 철저히 가리는 유교적 생활 원리가 적용된 전형적인 'ㅁ'자형이다.

집의 택호가 '골댁'이므로 사동골댁집이라고도 하는데 이 집터는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강릉 이남으로 동해안에서 가장 좋은 집터로 손꼽힌다.

▲ 평해황씨 해월공파 13대 황의석 종손(사진 왼쪽)과 종부 이정숙씨.


△사동리 최고 명당 해월종택

해월헌이 위치한 사동리는 광해군 때 길주목사를 지내고 이조참판에 증직된바 있는 해월 황여일의 후손들이 거주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모래 인근에는 금·은·동 등 광물질이 있다고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사릿골·사렛골·상사동으로도 불렸다.

'평해 황씨', '전의 이씨' '안성 이씨', '김해 김씨', '순흥 안씨', '안동 김씨', '광주 이씨', '경주 이씨', '충주 석씨' 등이 세거했는데 이 중 평해황씨가 세거한 이른바 '떡집'이 가장 좋은 집터라 불렸다.

평해황씨는 우리나라 황씨는 종가로 한나라에서 건너온 황락(黃洛)의 후예다.

그는 신라 유리왕 5년에 구대림(丘大林·평해구씨의 시조) 장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지금의 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지금의 울진군 평해면으로 표류해왔다.

평해황씨는 황락의 세 아들 중 첫째인 '황갑고'(기성군)의 후예라고 전한다.

하지만 기성군 이후 계대가 분명치 않아, 후손인 황온인(黃溫仁)이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내고 평해에서 세거하게 됨으로써, 후손들이 황락을 시조로, 황온인을 일세조로 해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평해황씨의 분파를 살펴보면, 황진의 후손이 검교공파(檢校公派), 황서의 후손이 충절공파(忠節公派), 황용의 후손이 충경공파(忠敬公派)가 되고, 검교공파는 다시 제학공파(提學公派),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불권헌공파(不倦憲公派)로, 충절공파는 예빈공파(禮賓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 충경공파는 의정공파(議正公派), 찬성공파(贊成公派), 밀직공파(密直公派), 관찰사공파(觀察使公派, 監司公派)로 나눠진다.

조선시대 과거급제자는 모두 90명으로 그 중 문과가 22명, 무과가 19명, 사마시가 47명, 역과가 2명이다.

인구로 보면, 창원황씨가 25만 2천814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장수황씨 14만 6천575명이며, 세 번째가 평해황씨 13만 7천150명이다(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평해황씨 후손들

평해황씨는 황여일을 비롯한 황중윤, 황만영 등 많은 인재가 배츨됐다.

황여일(黃汝一)은 호가 해월(海月) 로 조선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해 공을 세우고 명나라를 오가며 외교에 큰 몫을 담당했다.

아들 중윤은 1623년 인조 즉위 후 광해군 추종세력으로 몰려 해남으로 유배당했다가 유배에서 풀려나자 울진으로 낙향해 말년을 보냈다.

황윤석(黃胤錫)은 영조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익찬을 지냈다. 그가 쓴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와 '자모판(字母辦)'은 오늘날 국어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밖의 인물로는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 성주목사를 지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강화도가 함락될 때 중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황선신(黃善身, 병조참의 추증)등이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서 평해황씨의 인물로는 독립운동가였던 황만영씨가 있다.

황만영(黃萬英, 海月의 11대손)은 기성면 사동리에 학교를 설립하고 인재를 양성했다.

한일합방 후에는 만주로 망명해 신흥학교를 세우는데 참여했고, 이 때 종가의 재산 대부분을 독립군 양성을 위해 내놓으면서 종가 살림도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정·관계에서 이름을 날린 후손들은 황산덕(법무·문교부 장관), 황대봉, 황병우, 황병태, 황윤기(이상 국회의원), 황이수(전매청장) 등이 있으며, 황경로(황씨 중앙종친회장), 황진경(동국대학재단이사장), 휘경학원 이사장인 황온순씨가 있다.

또 황원구(연세대 교수), 황찬길(동양화가), 황지성(백암관광호텔 사장), 원로 영화배우이자 탤런트인 황정순, 마라톤 선수 황영조, 축구선수 황선홍도 평해황씨다.





△종택 지킴이 황의석 종손

평해황씨 해월공파 13대 종손인 황의석(79)씨는 조상의 얼을 받들며 해월헌을 지키고 있다.

황의석 종손은 유년시절을 종택에서 보낸 뒤 경주고등학교에서 행정업무를 보며 32년간 근무했다.

황 씨는 평소 종택은 후손이 반드시 지키고 이어나가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생활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종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황의석 종손은 "요즘 세상이 각박하다보니 개인주의가 심해져 조상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나를 이자리에 있게 만든 것은 분명 조상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며 한번쯤 조상을 돌아봤으면 좋겠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지금은 부인인 이정숙(69) 종부(宗婦)와 함께 고집하면 황씨 고집 답게 종택을 지켜내고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야 할 종택이지만 누구나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황의석 종손은 "어느 누가 봐도 종택은 아파트나 일반 주택에 비해 불편한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면서 "단지 생활의 불편이 두려워 종택을 내친다면 우리사회의 근간인 유교사상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며 조상을 섬기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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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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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