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아닌 것에 집착하기엔 우리네 인생 너무 아쉬워 나의 삶, 온전히 받아들여야

젊은 시절 우연히 책방에서 미켈란젤로의 생애에 관한 책을 집어 들었다가 "단 하루인들 나의 날이 있었던가?"라는 미켈란젤로의 탄식을 읽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태리 피렌체의 다비드상과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그림을 남긴 천재가 아닌가. 뛰어난 작품을 이뤄낸 그가 왜 그의 삶에 자신의 날이 없었다고 한탄하는 걸까. 오로지 예술작품에만 몰두해서 정작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돌이켜보면 모래처럼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갔다는 말인가. 시간은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적게 주어지고 많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 시간은 사물을 변화시킨다. 시간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언가 생성시키기도 하지만 마모시키고 떨어져나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변호사로서 사람들 사이의 다툼을 접하다보면 이런 변화의 극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법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이 갑자기 수감돼 그의 시간이 타인의 속박 속에 놓이는 순간을 본다. 이혼소송에서 아내와 남편이 한때 사랑해서 만났고 서로에게 집중하고 시간을 함께 한 일들이 모두 부인(否認)되어 그들의 과거가 하나같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변하는 것을 본다. 부부뿐만이 아니다. 자녀도 더 이상 자녀로 남지 않는 경우도 본다. 성년이 가까워진 딸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중학생이었던 자신을 추행했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오래전 일로 용서를 빌었지만 딸은 재판 내내 아버지를 중형에 처해달라고 요구했고 재판부도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재산도 마찬가지이다. 재산에 대한 소유는 법적으로 표상되는 개념에 불과하다. 평생 모은 재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증여나 매매나 재산분할이나 상속이라는 법의 그물에 걸려 어느 날 다른 사람의 것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든 아버지는 사업을 통해 모은 1천억원에 이르는 재산 대부분을 사업을 돕던 아들 명의로 해두었다가 그 아들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그 재산은 모두 둘째 며느리와 초등학생 손녀 차지가 되었다. 아버지는 재산을 찾으려고 소송에 나섰으나 모두 허사였다.

봄도 어느 덧 지났고 초여름도 지나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아내가 꽃잎들이 가득 떨어지는 봄철을 아쉬워한 것이 어제 같은데 말이다. 아직 사십대인 아내 앞에는 더 많은 시간이 놓여 있는데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안타까워한다. 나도 한때는 세상의 시간을 늘 아쉬워했다. 괴테처럼 "시간아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다"고 흐르는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신록이 빛으로 반짝일 때도 한낮의 조용한 기운을 느낄 때도 저녁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볼 때도 벚꽃들이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날 때도 아내가 예쁜 옷을 입고 막 집을 나설 때도 아이들이 웃고 떠들 때도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시간 속에서 흥분과 열정을 가라 앉히게 되었다.

시간이 진정으로 나의 시간이 되고 사물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되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을 때뿐이다. 지나치게 크거나 많거나 소모적이거나 대립되어서는 시간이나 사물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가 온전히 느끼고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지극히 적거나 작은 것이다. 더구나 영원히 내 것인 경우는 드물다. 내 것도 아닌 내 것에 시간을 들이고 집착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쉽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