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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명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경도 과장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 사건을 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살인 사건의 원인과 성격을 두고 그것이 정신질환 때문이냐 아니면 여성 혐오에 의한 범죄이냐가 중요한 이슈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남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필자로서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들이 있다.

우선적으로, 확실한 정신 감정에 근거하지 않은 채 경찰이 서둘러서 사건의 원인을 정신질환과 관련 있는 것으로 발표해 버리면서 대부분의 선량한 환자들에게 가해지게 될 부당한 낙인 때문에 불편하다. 설사 가해자가 망상과 환상에 의해 현실 판단을 못 해서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런 희귀한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 대해 공포를 키울 필요는 없다. 발생 빈도 면에서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소위 ‘정상적인’ 음주 운전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수많은 사고와 죽음들, 아니면 ‘멀쩡한’ 사람들의 분노조절 실패로 인한 끔찍한 인명 피해 사건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정신건강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환자보다는 정상인이 더 무섭다.”

다음으로 필자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현재 매스컴을 도배하면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여성 혐오와 여성들의 사회적 움직임에 대해 일부 남성 단체들이 반기를 들고 도발한 현상이다. 과연 여성 혐오라는 것이 실재하며 그것이 그만큼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가.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극단적인 단체들을 열외 시키더라도 일반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상당한 온도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여성 차별이라는 것이 공공연히 있어 온 것은 인정되더라도 그것을 혐오로까지 끌어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일반 남성들의 시각이지만, 여성들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지금까지 당해온 유·무형의 피해들을 혐오라는 단어로 과감히 집약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 남성들이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그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고통을 토로하는 여성들의 주장에 대해 관심을 갖고 더 들어주며, 그렇게 느낄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인정해 주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유연성의 결여가 실제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사례들을 진료실에서는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주부 우울증의 상당수는 고압적이고 융통성 없으며, 부인의 심리적 고통을 외면하는 남편 때문에 발생하는데, 대개 그런 남편들은 부인의 우울증 치료마저도 방해하는 경우들이 많다. 남편은 우울증을 ‘사치스런 병’이나 ‘배부르고 할 일이 없어서 생기는 병’으로 치부하며, 자기 의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치료 약마저도 복용하지 못하도록 저지한다. 병을 준 당사자가 치료마저도 방해함으로써 결국 부인의 병을 더 악화시키고 그 자녀들까지도 같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렇듯 가장 기본적 사회 단위인 가정에서도 여성의 고통을 대하는 남성의 태도가 구성원 전체의 정신건강과 행복을 결정하듯이 우리 사회 전체에서도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리라 본다. 여성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문제를 같이 해결해 가려고 할 때 돌아오는 혜택은 우리의 어머니와 누이, 아내와 딸들이 행복해지는 것이고, 거시적 관점에서는 우리 남성 각자가 종국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자가 참고 인내하면 화평히 오지만, 약자가 참아야 한다면 화병이 온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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