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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 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이 글은 6·25전쟁 당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학생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 일부이다. 이 편지는 그가 전사했던 다음 날 핏자국에 얼룩진 상태로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오자 어머니를 찾는 고작 열여섯 학도의용군의 절규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산자들의 가슴에 닿는다.

이 편지의 배경은 영화 ‘포화 속으로’의 모티브가 되었던, 그 유명한 ‘포항여중 전투’이다. 특히 이 전투는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못했던 71명의 학도의용군이 북한군의 거침없던 진격을 온몸으로 저지시키며 국군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던, 이우근을 비롯한 48명의 학도의용군이 꽃다운 목숨을 조국에 바쳤던, 한국전쟁사에 대표적인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부끄럽게도 이들이 고귀한 목숨을 던져 구했던 조국은 아직도 학도의용군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략적이지만 6ㆍ25전쟁 동안 3만여 명의 학도의용군들이 참여했고, 이중 2천500여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이 분들이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던 진정한 호국 영웅들이었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감사하는 유월의 끝자락이다. 다시 한 번 이분들의 숭고한 얼과 고귀한 희생정신, 투철한 애국심을 되새기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올 유월은 여느 때보다 엄중하고 혼란하다. 북한발 안보정세가 그렇고, 유럽발 경제정세가 또한 그렇다.

그런데도 더욱 위중하고 답답한 노릇은 이에 대응하는 정치권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들이다. 우리 정치는 오직 자신들의 입지와 집안일에만 매달려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격돌과 소탐대실의 모습만 무한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온통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비생산적인 정치뿐이다.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당대의 영웅 나폴레옹도 ‘정치는 현대의 숙명’이라고 갈파했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국가와 국민의 삶과 운명을 좌우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고로 정치지도자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보듬고 눈물을 닦아주며 문제를 해결하면서 일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갈등과 대립은 소인배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지고한 유월을 보내면서 군번도 명예도 없이 포화 속으로 산화한 꽃다운 학도의용군들의 애국심을 깊이 새겨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위하는 ‘호국 정치’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이제 우리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내도 한계에 이르렀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비록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변화와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치권의 제1과제이다. 애국심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다면 변화와 혁신은 어려운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아니다. 애국심은 정치인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자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우리 정치, 정말 이게 아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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