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이 2011년 12월 18일 저녁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의 가라오케에서 내연녀 등과 술을 마신 뒤 호텔 방으로 갔다가 쓰러졌고, 인근 중국 인민해방군 4040의원으로 이송됐으나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검찰이 재수사 끝에 28일 조희팔에 대해 ‘공소권 없음’처분을 내렸다.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단군 이래 최대 사기 금액으로 유명한 조희팔이다. 검찰이 밝힌 사기 금액은 5조715억 원. 조희팔 일당이 지난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2년 5개월간 ‘의료 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다’며 7만여 명으로부터 끌어 모은 돈이다. 검찰은 조희팔 일당이 챙긴 수익금은 2천900억 원에 달하며 피해자들이 입은 순손실액은 4천800억 원이라 했다. 그간 수사를 통해 조희팔 조직의 2인자 강태용을 비롯, 조희팔의 돈 2억7천만 원을 받은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 9억 원을 받은 권혁우 총경 등 71명이 기소됐다. 구속자만 45명이었다.

경찰은 이미 지난 2012년 5월 21일 ‘조희팔 사망’을 발표했다. “중국 칭다오의 가라오케에서 가수 나훈아의 ‘홍시’를 부르다가 쓰러진 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8일 발표와는 죽은 장소가 다르고 노래를 부르다 죽었다는 정황이 다를 뿐이다. 당시 피해자단체들은 경찰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의 사망 발표 이후에도 골프장 목격담, 내연녀 자금 조달설, 도박장 출입설 등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조희팔이 중국 관광객과 섞여 제주로 입국한 다음 대구까지 와서 업무를 처리했다는 루머가 돌았다.

조희팔 사망 미스터리가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이유는 신뢰를 잃은 검찰과 경찰이 한몫했다. 조희팔과 그 측근들에게서 각종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검찰과 경찰, 교정당국 관계자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부장검사에서부터 경찰 경위까지 잇따라 구속되면서 ‘사망’은 ‘사망설’이 됐다. 아직도 피해자 모임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회원들은 조희팔이 여전히 중국에 살아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이 두 번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혔지만 믿을 수 없다는 조희팔 사건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 신뢰가 무너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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