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 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감상) 어제 스러져가는 꽃을 보았으니 오늘도 스러지는 한 때를 보리라. 스러지는 한 때가 내일을 불러오는 광경을 보리라. 그 광경에서 손톱 깨물며 발 동동 구르던 시간만이 살아남아 있음을 보게 되리라. 사랑 받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리라.(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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