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했어요.

낡은 지도 한 장 들고 서귀포로 갑니다.

마른 갯벌엔 눈 감은 게껍질들이 붙어 있어요.

가는귀먹은 게들이 남아서 부스럭 거립니다.

햇빛과 목마름으로 여기까지 버티어온 나는

바다를 앞에 놓고도 건너갈 수가 없어요.

아내의 나라가 보이는 곳까지 가까스로 닿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가까스로 닿습니다.

나의 처소는 이끼 낀 흙담벽이 둘러쳐져 있어요.

그리고 한 평 반의 바람드는 방엔 닿을 수 없는

아내의 바다가 수심에 잠겨 출렁거려요.

그리운 쪽빛 바다 서귀포.


감상) 가난한 마음에 비가 오면 세상은 젖지 않고도 강이 되지 그 강에는 물고기도 없고 물풀도 없고 다만 그 강 건너엔 해가 뜨는 날에도 무지개가 뜨지 그 무지개에 아무도 모르는 가난한 다리가 있어 그 다리 아래로 가난한 마음과 또 다른 가난한 마음이 모여 고무줄 놀이를 하지 어쩌다 가끔은 무지개 건너를 그리워 하지(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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