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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살다 보면 ‘틀’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세상만사, 주어진 틀(형식)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고 손해 볼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틀은 아마 용모(容貌)일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타고난 용모 때문에 겪는 행·불행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젊으나 늙으나 여성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당신 참 예쁘다”랍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용모의 틀’에 대한 여성들의 간절한 집착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또 세속적인 어떤 원인 때문도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수 천 년 전의 서양 신화에서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파리스의 황금 사과’가 그것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적혀있는 황금 사과를 던지고 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것을 본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서로 황금사자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너무 극렬하게 싸우니까 ‘위대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제우스는 그 판정을 양치기 미남자 파리스에게 맡깁니다. 

그가 공정하다고 소문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파리스에 대한 여신들의 선심 공세가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헤라는 권력과 부를 주겠다고 말하고,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영광과 명예를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헬레나)을 약속합니다. 파리스는 누구와 거래를 했을까요? 아프로디테였습니다. 망설임 없이 최고의 ‘용모의 틀’을 선택했습니다. 

황금 사과를 가지게 된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되고, 파리스는 그 대가로 헬레나를 얻게 됩니다(이 헬레나가 트로이의 왕비였기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납니다). 신화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전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의 비밀’을 전하는 것이 신화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도 그렇게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즘 미술계에서 대작(代作)이니 위작(僞作)이니 해서 말이 많습니다. 위작 소동의 한가운데에 놓인 한 유명 작가는 이러저러한 ‘틀의 미학’을 들면서 자신의 작품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수사당국에서 잡아놓은 범인을 아예 부정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고 이상한 적반하장입니다. 여기서도 모종의 ‘존재의 비밀’을 전하는 신화적 화법을 봅니다.

저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한 화랑 주인은 위작 문제가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최근에도 2억 원 넘게 평가된 추사 작품 한 점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대단한 문중의 문집 책갈피 속에 고이 접혀서 남모르게 보관된 것이니 누구도 의심치 않았답니다. 그런데 감정위원들은 위작 판정을 내렸습니다. 감정을 의뢰한 이는 문중 기록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추사에게 그 난초 그림을 언제 받았는지를 증명하겠다고 펄펄 뛰지만, 그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듯합니다. 그 기록이 나온다 하더라도 감정위원들은 “어쨌든 ‘틀의 미학’으로 봐선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적 텍스트를 지각하는 과정에서 틀이 지니는 중요성이야말로 최우선으로 고려할 사항이기 때문에 감정위원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인생의 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여성들의 외모 선망과 연관된 신화 이야기로, 예술작품의 위작 판정 이야기로, 본의 아니게 산만하게 흘렀습니다. 어쨌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틀에 얽매여 삽니다. ‘틀을 깬다’는 것은 새 틀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할 뿐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언제나 운명인 그 틀에 있습니다. 불교의 ‘일체유심조’도 기독교의 ‘십자가’도 그 틀 앞에서는 언제나 무용지물입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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