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 교수
엊그제 한국과학철학회와 한국분석철학회는 대전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연합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양 학회는 공동의 주제로 ‘사회의 미래, 철학의 미래: 모어의 ‘유토피아’ 출간 500주년’으로 내걸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1516년에 나온 것을 기념하는 학술회의였다. 두 학회의 대표들은 공동으로 적은 초대의 글에서 “잘 아시다시피 ‘유토피아’는 사회 문화적 격동기를 살아가는 지성인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책으로서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알파고>로 대표되는 21세기 정보사회에서 지성인의 역할을 반성하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성찰을 표출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500년 전의 영국사회와 지금의 한국사회는 혼란스럽고 빈익빈 부익부와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영국은 잦은 전쟁이 끝나 제대군인들이 넘치자 지주들은 토지세를 인상하고 목장을 설치하며 농민들을 내몰았다. 생계형 절도범이 증가했고 딱딱한 규정과 법은 범인들을 교수대로 보냈다. 궁핍한 현실로 범죄는 점증하고 죄과에 비해 가혹한 처벌이 수반되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오늘날 가난한 젊은이가 카드빚을 돌려막다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현실과 비슷하고, 수도권 무주택자의 전세, 월세난의 증가가 그들의 희망의 사다리를 끊는 한국사회와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국가적 궁핍과 위기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만 연연하던 헨리 8세는 모어가 대법관이 되던 시기에 불임의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을 왕비로 다시 책봉하는 무리수를 둔다. 당시 세계질서의 기준인 교황청과 대립하여 영국의 국교를 성공회로 만들고 자신이 그 수장이 되어 성속의 권한을 장악한다. 경건한 신앙심과 가정의 평화 그리고 검약을 생활신조로 민심을 얻은 모어는 이런 왕의 일탈을 양심상 지지할 수 없었다.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 왕과 그 측근들을 용납할 수 없는 그는 당연히 그들에게 내몰려 자리를 빼앗기고 급기야 능지처참의 선고를 받는다. 참수형으로 감형되기는 했으나 그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지킨 훌륭한 당대의 지성인이었다. 그의 가정에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을 집필하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이나 고급관료들이 국가적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신상의 안일을 위해 거액의 뇌물을 받고 또 당리당략 앞에서는 여야 없이 막장 정치를 일삼는 것은 500년 전의 영국과 너무나 닮아있다. 역사는 바뀌어도 인간의 행태가 여전하다는 것은 참으로 우매하다.

모어의 『유토피아』의 내용은 이러하다. ‘악이 번성하지 않기 위해 사유재산은 인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일하는 농업사회이며, 행정관은 선출하고 식사는 공동으로 한다. 여행은 허가를 받아야 하고,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만이 허용된다. 전쟁포로와 범죄자는 노예가 되며, 종교는 한없이 관용된다.’ 이것은 한 마디로 이성이 지배하는 공산주의적 도시국가이다. 그런데 이런 세계는 과연 가능할까? 그래서 유(없음)토피아(장소)라고 이름 붙였다. 아무 데도 없는 장소인 것이다.그런데도 그것은 유(좋은)토피아(장소)이기도 하다. 정말 멋진 세계이다. 그러나 강조하는 속뜻은 적어도 현실이 개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주목할 것은 토마스 모어가 제시한 저 ‘유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백성들의 왜곡된 이 ‘현실’이다. 그들의 혜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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