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선배 문학인의 작품을 읽으며 무한한 감동에 젖을 때가 있다. 어느 한 작품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훌륭한 작품엔 생각의 독특함, 소재의 특이함, 유려한 문체를 비롯하여 작가가 살던 시대의 모습도 엿보게 된다. 그런 작품에선 우리 조상들의 삶의 양식이 문장에 섬세하게 용해되어 있음도 발견한다.

그렇기에 많은 지역에서는 문학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한다. 그 지역 출신의 유명 문학인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삶의 과오를 떠나 많은 돈을 들여 문학관을 짓고, 생가를 복원하고, 널리 홍보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한다.

문학 작품의 소재지 역시 마찬가지다.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 되었다는 경주 금장대 앞 형산강은 문학인들이 이따금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 역시 섬진강 곁의 평사리라는 빼놓을 수 없는 지명이 등장하기에 관광지가 되었다.

문학 관광 상품으로 대표적인 곳으로 영양의 지훈문학관, 안동의 이육사문학관, 옥천의 지용문학관, 고창의 미당문학관, 군산의 채만식문학관을 비롯하여 지용 생가, 만해 생가, 영랑 생가, 육사 생가 등 우리나라에 산재한 문학의 흔적을 찾아보면 그 숫자는 백 단위는 훨씬 넘을 것이다.

지난달 24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추진과 관련해 지자체 간 배수진을 친 유치경쟁이 과열되면서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며 “후보지가 선정되더라도 반발과 불복 등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현 상황에서 건립 후보지 선정 등을 서두르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당초 계획을 변경·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에 뛰어들었던 대구, 경주는 닭 쫓던 개처럼 되어 버렸다. 지역 문학인으로서 가까운 곳에 유치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사라졌다. 물론 올 하반기에 ‘한국문학 진학 진흥 중장기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새롭게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모색하겠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지역과 관련된다면 쉽게 결정 내릴 수 없어 보인다.

문학관은 영남권 신공항과 다르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조 단위의 금액이 투자되지만, 문학관은 억 단위의 금액이다. ‘자 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란 속담이 있다. 밀양과 가덕도의 신공항을 놓고 영남 민심이 분열되었다고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뒤로 미루는 것은 오히려 그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신청한 24개 지역에 새로운 불씨를 붙이는 화근이 될 수 있다.

영남의 신공항이 겁이 나 문학관을 딱히 한군데 지을 수 없다면 분산하여 지으면 어떨까. ‘국립한국문학관’ 건설에 500억 정도의 돈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50억 정도 들여 지역문학관 열 군데를 짓는다면 10군데의 문학관 갖게 되는 일이며, 지역의 문화발전에도 기여하는 일이다.

문학은 모든 예술의 바탕이 되는 주춧돌이다. 지역 특색의 문학관을 지역에 맞도록 건설한다면 오히려 지역민들에게는 접근성이 편리할 것이다.

훌륭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보면 그들의 예술 밑바탕엔 향토성이 있다. 문학은 어떤 것보다 향토성에서 출발하고, 상상을 자극하고, 간접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며,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하는 힘을 갖게 한다.

공모를 통한 경쟁을 유도하다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보단 향토성을 살릴 수 있는 지역문학관을 짓는 일도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