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오른 적이 있다/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그녀가 보채기 시작했는데/산길에서 만난 요의는/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결국 내가 이끄는대로 산길을 벗어나/숲속으로 따라들어왔다/어딘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다가/적당한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나를 바위 위에 세워둔 채/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너무 멀지도/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아예 멀리가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그 간극/바위를 사이에 두고/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하기 적당한 거리

감상)옛날 그 부인은 자주 몸종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는군요, 그것은 몸종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저의 목소리를 남편이 듣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데요 귀 좀 기울여보실래요 누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당신을 부르려는 게 아니에요(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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