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지부장님.jpg
▲ 이상식 시인
KTX 역에 마중을 나갔다가 주차 위반 과태료 통보를 받았다. 서울서 내려오는 첫돌이 안 된 아이와 유모차 때문에 생긴 사달. 주차장 이용을 꺼려한 과오는 차치하고 지방세 증대에 일조하니 기분이 언짢았다.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처럼 CCTV 감시망 속의 군상도 겹쳐서다.

가끔 들르는 동네 식당이 있다. 삼겹살 상차림이 정성스런 단골집.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한동안 발길이 뜸했다. 왜 그렇게 안 왔느냐고, 뭐 잘못된 게 있느냐고 표정을 살피는 주인장.

순간 우편물을 받아든 아내의 표정이 상기됐다. 어쩐지 돼지고기 먹으러 가자는 타령이 없더니만. 결국 과태료는 풍선효과인 양 엉뚱한 쪽으로 손해가 전가된 셈이다. 세상사가 이럴 수도 있구나, 덩달아 쓴웃음이 나왔다.

새봄이 앳된 청춘이라면 여름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다. 남국의 태양이 뿜어내는 생명의 에너지가 산야에 미만하다. 초록빛만큼 그 스펙터클이 다양한 색상이 있을까. 연록부터 진녹색까지 형용키 어려운 깊이를 간직한 색깔들. 성장과 번식의 염원을 키우는 초목은 작열하는 양광을 품고서 한없이 의연하다.

여름은 밤이 제격이다. 대낮의 열기를 식히는 어둠의 자락은 아련히 내밀하고, 서늘한 미풍이 생동감을 더한다. 요즘처럼 무더운 계절의 야밤이 배경인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동화적 분위기로 사랑의 변덕과 성취를 그린다.

한여름 밤의 꿈은 신비로운 색채가 감돈다. 세 쌍의 연인과 요정이 어우러져 요원한 만남을 살갑게 엮어 가는 내용. 여기서 한여름 밤이란 낮이 가장 긴 하지의 전날 밤을 이른다. 서양에선 이날 밤에 진기한 일이 벌어진다는 속설이 전하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를 근거로 희곡을 썼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현란한 문장력과 탁월한 비유법에 매료되곤 한다. 만약 누군가의 문학에서 그런 표현이 있다면, 아마도 책을 중도에 덮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멸의 금자탑인 4대 비극과 5대 희극은 묘한 문체의 마력에 빠져든다.

“관객들에게 눈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두게. 먼저 눈물의 폭풍을 일으킨 다음, 눈물의 바다에 빠지게 해줄 테니.” “한밤중이라는 위험한 시각에 으슥한 곳이라, 누구라도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소. 당신은 지금 처녀성이라는 값진 보화를 갖고 있잖소.”

녹음방초 달이는 불볕더위와 후텁지근한 장마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이즈음. 그래도 싱그러운 푸름과 여름밤이 있기에 삶은 견딜 만하다.

나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샤워를 한 후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시원한 수박을 맛볼 때의 달콤한 상쾌함이 너무 좋다. 입 안 가득 삼키는 붉은 단물은 포만감과 청량감이 차오른다.

가랑비처럼 부드럽게 내리는 밤비를 맞으며 조깅할 때의 헉헉거림은 온몸의 동심을 일깨운다. 일부러 비를 맞을 기회가 쉽지 않은 터라, 빗속을 달리노라면 마치 기관차가 된 듯한 환상에 젖는다.

순수함을 잃어선지 아님 열정이 없어선지 꿈조차 사라졌다. 가위 눌린 꿈이라도 그립다. 한 번쯤 꿈자릴 기다린다. 셰익스피어 같은 ‘한여름 밤의 꿈’이라면 더욱 멋지리라. 꿈결에 탄생한 비틀즈의 명곡 ‘예스터데이’처럼, 꿈속의 얘기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말이다. 멘델스존의 그 극음악 선율이 감미로운 여름밤은 아스라이 깊어 간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