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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하 수상하니 별소리를 다 듣고 산다. 한 고위공직자가 언론에 대놓고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신분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망언에 온 나라가 연일 시끌시끌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99%의 민중들, 특히 청년들이 이토록 힘든 시기에 희망의 사다리를 어떻게 구축할지를 고민하고, 이에 진력해야 할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국민을 더욱 화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해당 언론에서 해명의 기회를 주었지만, 해명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자 뒤늦게 국회에 나와 취중에 본심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지 않는가. 흔히들 취중 진담이라는 말을 한다. 그의 해명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공무원에게 더는 공직을 맡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99% 민중의 목소리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그에게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물론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을, 국민에게는 정직과 봉사를’이라는 공무원 신조는 아예 없었다. 국민모독에 이어 대한민국 헌법과 공직을 지독하게 모독했다.

가히 인면수심의 종합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공직사회에 혹여 그와 같은 사고를 지닌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두려움마저 엄습한다. 비록 사치스럽고 부질없는 희망일지언정 고위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기대하며 ‘노블리제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을 주문한다.

이러한 노블리제 오블리주는 초기 로마를 세계사의 중심으로 만든 기반이었지만 권력이 귀족 중의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원에 집중되었던 제정(帝政) 이후 로마는 이들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로 인해 쇠락을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선비정신’이 있었다. 선비정신은 고려·조선시대의 고위 관료였던 사대부들의 정신이 아니라 학문과 덕성을 끊임없이 키우며, 지조와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정신을 말하는데 지금도 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정신일 것이다.

조선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 “무릇 공직자의 본 업무는 민중에 대한 봉사 정신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갈파했다. 왕조시대에도 공직자는 멸사봉공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러한 정신들은 모두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공직사회의 금과옥조이자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은 한 공직자의 실언으로 간주하기에는 국민이 받은 충격과 상처는 상상 이상이다. 당국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대충 넘어간다면 국민의 분노는 타오른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그는 민중을 돼지에 비유했지만 돼지는 흔히 탐욕스러운 대식가로 비유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탐욕에서 비롯된 대부분 사건은 그 1%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민중의 탐욕은 그들에 비하며 그저 소박한 희망일 뿐이다. 누가 돼지인지는 그 1%들만 모르고 있을 뿐 99%의 민중들은 다 안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영국의 철학자 밀의 경구처럼 민중은 그들에게 동물적 탐욕보다는 비록 어려울지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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