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는 경상북도의 서쪽 끝, 높이가 1천430m인 가야산으로 높게 울타리를 쳤다. 가야산은 경남 합천 쪽으로 길을 열어두고 성주군으로부터는 돌아앉았다. 이 때문에 성주는 개발되기 어려운 험지가 많다. 이렇게 자연의 울짱이 높았던 만큼 바깥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그만큼 고집스러움이 있는 경북의 반촌이 성주다.

간악한 일제 식민지 시대에 경부선 철도의 노선을 틀어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철도가 지금의 왜관을 거치지 않고 성주의 한개마을을 지나기로 설계돼 있었지만 마을 양반들이 솔선 반대에 나서 어쩔 수 없이 노선을 변경했다는 얘기다. 일부 사람들은 나라까지 통째 삼킨 놈들이 시골 양반들의 반대가 무서워서 계획을 변경했을 리 만무하다는 말도 한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었거나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거나 간에 철도가 휘어져 나가게 했다는 일화는 그만큼 양반들의 입김이 세다는 것을 웅변한다.

성주 사람들의 먹고사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농사가 대부분이다. 1980년대 초에는 정월 하순쯤 서울의 백화점에 등장하는 명물이 있었다. 당시 속성으로 재배한 성주 수박이었다. 성주 농민들은 1940년대부터 온 힘을 기울여 고품질 수박을 생산해냈다. 한때 수박 전국 생산량의 90%가 성주 것이었다. 1980년 통계를 보면 수박과 참외, 오이를 생산하는 농가 수가 6천293 가구였다. 당시 군 인구 70%가 농민이었고 그중 수박과 외 재배농이 절반을 넘었다.

성주는 시설재배도 여느 지역보다 이른, 1960년대에 시도했다. 성주는 대체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태풍과 큰비의 피해가 적기 때문이다. 수박과 참외를 함께 생산하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참외 생산이 더 많아져 최근에는 ‘성주 하면 참외, 참외 하면 성주’로 불리게 될 정도가 됐다. 성주에서는 4천224농가가 3천655㏊의 참외밭에서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를 생산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 시장에 수출까지 하고 있어서 연간 5천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참외 수확이 끝나면 성주군에 굴러다니는 자동차 때깔이 바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농가 수익이 높다.

국방부가 이 청정 자연의 성산가야 옛터에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를 배치한다는 결정을 했다. 순박한 민심이 멍들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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