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가운데 국정 최고 책임자나 다름 없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경북 성주군청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한 주민 반발로 6시간 30분 동안 발이 묶인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난 민심은 이해하지만 헌법상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가 났을 때 총리가 1순위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도록 되어 있고 엄연히 남북대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안보 총책임자와 대치, 사실상 길을 가로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대통령 해외 순방이잠시 외국으로 출장을 간 상황에 불과하기 때문에 총리 역할은 권한을 대행한다기 보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총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칫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외교·안보와 관련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총리가 직접 ‘지하벙커’로 불리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지시를 하겠지만, 실시간으로 상황을 점검하고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큰 사고가 날 때도 총리가 ‘국정 컨트롤타워’로서 관련 부처를 통할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때문에 대통령 순방 기간에 국정 운영에 문제가 생기면 총리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날 성주에서 발생한 일을 보면 안보 관련 위기상황이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원광대학교 김태웅 군사학부 교수는 “사드는 성주군민이 생각하는 것 만큼 인체나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며 “군민이 극도로 화가 나 총리와 국방부 장관에게 지나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총리가 일국의 수장 자격으로 성주를 방문했기 때문에 우선 격에 맞는 대우를 했어야 했다. 설명회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대화할 기회도 걷어찬 것은 제살 깎아먹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에도 소위 남남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만 보여준 꼴이 돼 아쉽다”고 했다.

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은 “오늘 상황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황 총리로서도 그렇고 주민들로도 그렇고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과정이지 않았나하고 생각하나 이제부터라도 주민이 이성을 되찾고 차분하게 대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황 총리로서는 성난 민심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주민과 소통하는 방법의 하나이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변희재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대표 “성주 주민은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하는 상황에서 총리가 직접 오니 하소연 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 방식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몇몇 사안을 보면, 정부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현장에 갔을 때 관계자들이 도를 넘는 방식으로 해서 원하는 바가 관철된 사례가 있었다”며 “우리 사회가 갈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되는데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시민도 총리가 발이 묶여 일정을 취소해야 하는 일은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주 시민 박현석(32)씨는 “사드 배치가 지역과 주민에 어느 정도 피해를 주는지 분석이 엇갈리기 때문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오늘 지역 주민이 보여준 태도는 다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와 장관이 준비한 설명회 정도는 듣고 대화 테이블에서 항의하거나 행동을 보여야하는데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나 싶다. 정부 결정에 강력하게 맞선다는 취지겠지만 정부와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스스로 닫아버린 격이다”고 밝혔다.

대구에 사는 최모(60)씨는 “성주에 그런 시설이 들어와서 걱정스러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에 사는 박모(49)씨도 “방송뉴스로 현장을 지켜봤는데 놀랐다”며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라 총리가 국정 책임자인데 계란까지 맞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김모(30) 씨도 “이 문제는 정말 이성적인 판단과 합의가 필요한데 성주 군민과 정부 양측이 감정 싸움으로 치닫지 말고 합리적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시 애월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0)씨는 “주민과 협의가 선행되지 않은 채 사드 배치지역을 설정했다 하더라도 국방, 안보와 관련한 사안을 어떻게 하나하나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반면, 한 성주군민은 “사드 배치 발표 전에 아무런 협의가 없었고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는 등 정부가 절차를 어겨 군민을 화나게 만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군민은 “우리가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미니버스에 탄 총리에게 나오라고 했는데 스스로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며 “주민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보도에 불만을 느낀다”고 했다.

관련기사
연합
연합 kb@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