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리] 군위 콩잎김치 영농조합 원산지 표시 잘못…벌금 700만원

▲ 콩잎김치를 담그는 할머니의 표정이 어둡다.

군위읍 산성면 화본리에 있는 군위 콩잎김치 영농조합의 윤팔선(58) 대표는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농산물 원산지 표기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범법자’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콩잎 김치를 담그면서 국내 유명 업체가 만든 간장과 조청을 넣고 포장재에 ‘국내산 간장·국내산 엿’이라고 적은 것이 문제였다.

“좋은 간장과 조청으로 콩잎김치를 만들겠다고 유명회사 제품을 사용했는데 도리어 불이익을 당하게 될 줄이야…. 제가 무식해도 너무 무식한 탓이겠지요.”

윤씨는 “주위에서 물 10%(국산) 외에 공기 5%(국산)이라고 표기하라는 핀잔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무지함을 원망했다”고 말했다.

조합원 강씨(74) 할머니는 “단속이 있은 후 새댁(윤씨가)이 김치를 담그다가도 실성한 사람처럼 한숨을 내시거나 구석진 곳에서 혼자 훌쩍일 땐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전했다.

‘군위 콩잎김치’는 지난 2010년 이 마을 부녀회 60~70대 할머니 6명과 윤씨가 영농조합을 만들고 공장을 차리면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경북도와 군위군도 사업비 80%에 해당하는 보조금 2억2천여만 원을 지원해 이들을 도왔다.

제품이 출시되면서 월 7천만 원 까지 매출을 올리는 등 옛날 산골에서 즐겨 먹던 밑반찬이 도시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유명백화점으로부터 독점판매계약 요청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할머니들이 조합원이고 이사이다 보니 대량 생산하는 다른 회사 제품에 밀리기 시작했다. 올 들어선 월 매출이 300만~4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현재 판로는 인터넷 쇼핑몰 뿐이다.

이 영농조합은 최근 매출 불항에 악재까지 겹쳤다. 지난 4월 중순에 국립농산물품질검사원이 수입산 식품표기를 위반한 혐의로 입건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업체에 대한 사전 지도나 계도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관원 관계자는 “사정은 딱하지만 고발된 상태라서 단속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보상금을 노린 ‘식파라치’에 걸려들었다는 얘기였다.

윤씨는 “국내 유명 회사 제품을 쓰지 말고 그냥 시장에서 싼 간장, 조청을 사다 썼더라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라며 후회했다.

“죄는 있으나 경미하여 용서한다” 윤씨는 지난 5월 20일 ‘기소유예 처분’ 이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용어조차 몰랐던 이 조합 할머니들은 주위에 물어물어 그 의미를 뒤늦게 알게 됐다. 윤씨는 관용을 베푼 검찰에 꾹꾹 눌러쓴 손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했다.

그러나 9일 뒤 검찰로부터 또 다른 통지서를 받았다. 이번엔 ‘벌금 700만 원을 주문하는 약식명령서’였다. 검찰이 영농법인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대표에겐 벌금형을 내린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자 윤씨 주변에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마을 이장과 농촌소득지원 발굴사업에 적극적이던 장욱 전 군위군수가 콩잎김치 할머니들의 처지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올렸다.

지난달 말 대구지법 의성지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서 국선변호인은 업주가 초범이고, 고의성이 없고, 관련 법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영세한 시골부녀회가 꾸리고 있다는 점 등을 재판장에게 변론했다. 법인을 만들 당시 아직 은행대출을 갚지 못한 자료도 제출했다.

이날 재판이 끝나갈 무렵 “앞으로 법을 어기지 않고 제대로 지키겠느냐”고 재판장이 물었다. “예….” 들릴 듯 말 듯한 윤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선고 공판이 있은 지난 14일 대구지법 의성지원 1호 법정 앞에는 할머니 3명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처음 서보는 법정 앞에서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선처’였다. 하지만 법은 이들이 원하는 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간장 등의 원산지를 국산으로 표시한 것이 제품 판매에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이고, 제품 판매 기간과 금액 등을 고려하면 해당 벌금이 많다고 볼 수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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