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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끝머리 1999년이었다. 난 새 차를 뽑았다. 그러면서 당시 일각에서 일던 30만 ㎞ 타기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내심(內心) 약속했다. 그때 뽑은 차가 주행거리 30만 ㎞를 맞이한 때는 올해 3월 울산광역시에 들렀을 때였다.

30만 ㎞ 그 거리 안으로 참 많은 다리를 건넜다. 빨리 갈 수 있는 다리는 유혹이었다. 다리를 지나 서울, 인천, 강원도 등 우리나라 곳곳을 누볐다. 다리가 없는 경기도 제부도에 들어갔다가 물에 갇혀 썰물 때까지 섬에 갇히기도 했다. 그뿐만아니라 임진강 다리를 건너 개성 가는 길로 차를 올렸다가 검문소에서 되돌아오기도 했다. 20만 ㎞는 충북 단양 남한강 상류 상진다리에서 맞았다.

많은 다리를 건넜을 뿐만 아니라 황동규, 정호승 시인, 박완서, 한승원 소설가를 비롯하여 유명 문학인이 포항에 왔을 때 내 차를 이용해 문학 애호인과 만나는 가교(架橋)역할을 하였다.

빠름과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더딘 발길이었지만 낡았어도 많은 사연이 보석처럼 담긴 차라 타는 사람에게 자랑했다. 계기판이 30만 ㎞를 가리킬 때 새 차를 주문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차를 받으려면 3개월이란 시간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했다. 포항~울산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틀 전, 그러니까 30만에서 5천 ㎞를 더 달렸을 때 새 차가 나왔다.

차를 인수한 주말 지인 몇이 포항~울산 고속도로가 뚫렸다며 새 차로 울산에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울산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일행을 태운 차는 남포항에서 울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올랐다. 반듯하게 길을 내다보니, 고가다리와 터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나눈 것 같은데 울산 이정표가 보였다.

“울산보다 부산 해운대 근처 달맞이 고개로 가면 어때요.”

누군가의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목적지 울산에서 새로운 목적지 해운대 달맞이 고개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달맞이 고개 한 식당에서 점심을 시키고 창밖을 보니 광안리 다리가 보였다.

인구 355만 명이 거주하는 부산광역시에 있는 광안리 다리를 바라보면서 영일만에 놓겠다는 다리를 떠올린 것은 최근 여러 사람의 입에서 영일만 대교(大橋)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에는‘영일만을 가로지르는 횡단대교 9㎞ 구간을 터널 5.5㎞와 교량 3.6㎞로 건설하는 안에서 터널 대신 모두 교량으로 건설하는 안이 구체화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으며 차로 길을 빠르게 이용하는 것은 인간의 커다란 욕망이다. 영일만에 다리를 놓으면 소통은 원활한 만큼 시내 바닷가에서 만을 바라보는 아름다움은 떨어질 것이다. 1조8천여억 원 정도의 돈이 들어가는 긴 다리를 이용하려면 통행료도 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편익에 비해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탈락했다고 한다. 비싼 통행료를 내더라도 영일만에 다리가 놓이면 새 차로 달려보고 싶다. 그런데 영일만 바다 위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포항 시내를 그냥 지나칠까 걱정도 생긴다. 울산으로 가다가 부산까지 갔듯이, 길 흐름의 빠름에 죽도시장에 들러야 할 사람이 강원도까지 갔다가 되돌아가게 된다면…. 포항 울산고속도로를 처음 이용하면서 더위에 생긴 쓸데없는 걱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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