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정

청도 동창천은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에서 시작해 청도군 운문면과 금천면, 매전면을 돌아 흐르다 청도읍에서 밀양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낙동강 수계다. 하천길이가 62.5km나 되는데 운문면을 지나면서 운문천이, 매전면을 통과하면 관하천이 합류해 강폭이 넓어지고 수량이 풍부해져 옛날부터 물산이 풍성하고 경관이 빼어났다.특히 운문면 금천면 동곡리 새들보와 삼족대 앞의 당호숲, 신지리 만화정 앞의 섶나루 지역 등은 유명세가 높다. 


만화정이 있는 신지리의 본래 이름은 섶마리, 섶말이다. 마을 전체를 동창천이 휘감아 돌아간다. 강은 암벽을 휘감아 돌면서 곳곳에 절경을 만들어 놓았다. 용두소, 소요대 같은 명승지가 강이 만든 대표적인 명승지다.용두소와 소요대가 강이 만든 예술품이라면 이 마을의 중심에 있는 고색창연한 고택은 삶의 철학이 형상화한 예술품이다. 운강고택과 운남고택, 섬암고택, 명중고택 도일 고택등 조선시대 고건축물이 지붕과 지붕을 맞대고 자리잡아 조선시대의 유향(儒香)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밀양박씨 세거지다.

면소재지가 있는 동곡리에서 919지방도를 타고 금천교를 넘어서면 그때부터 신지리가 시작되는데 금천교 지나자 말자 왼쪽 강 언덕위에 만화정이 수려한 풍광을 뽐내며 숲 사이에 서있다.

만화정은 통정대부와 좌승지에 오른 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1814~1879)이 1856년 후학 양성을 위해 건립한 정자다. 박시묵은 만화정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운강고택의 주인이기도 하다. 운강고택은 본래 그의 11대조인 박하담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었으나 박시묵이 증축했다. 건물규모가 1,770평, 건축물 9동에 80칸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로 중요민속문화재 106호다.

만화정은 정자 주변의 바위와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 지은 정자다. 정자 앞에서 큰 그늘을 만들어내는 수그루의 떡버드나무가 정자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있어 고색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만화정 전경

만화정은 아기자기하면서 화려하게 꾸며졌다. 누마루를 중심으로 ‘ㄱ’자 형태로 건축됐다. 정면 4칸 중 왼쪽에 방1칸 오른쪽에 방 2칸을 두고 가운데 방과 방사이에 마루를 두었다. 마루는 방과 방사이, 정자의 앞뒤로 통하는 통로로 사용했다. 남쪽 방 앞에 누마루를 내어 ‘ㄱ’자 형태를 완성했으며 정문인 유도문에서 정자까지는 돌계단을 둬 입체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처마를 받치는 활주가 보통 4개인데 누마루를 지탱하기 위해 하나를 더 둬 모두 5개의 활주를 둔 것도 이색적이다.

정자에는 출입문 현판과 기문, 시문을 합쳐 모두 25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정자 현판 ‘만화정’의 ‘만화’는 동창천 너머 드넓게 펼쳐진 들판, 만화평萬花平에서 따왔다. 만화의 ‘화花’를 ‘화和’로 바꿨다. 화和는 ‘중용’에서 가져왔다. ‘中은 천하의 근본이고 화和는 천하에 통용되는 도’라고 한데서 비롯됐다.박시묵은 ‘화’의 의미를 ‘주옹만영’이라는 시에서 더 확실히 설명하고 있다. 이 시의 현판은 정자 안에 걸려있다.



하나의 마음이 화하면 기운도 화하는 법

나의 마음과 기운을 화하게 하여야 중화를 이루리라

냇물이 사해에 귀의함이 모두 살아있는 것 같고

온 산에 꽃이 피는 것도 모두 함께 화의 기운을 얻음이라

(후략)



만화정 정문은 ‘유도문 由道門’인데 도를 근본으로 한다는 뜻이다. 편액아래에는 아들 박재형이 지은 유도문 중수기가 있는데 하얀 바탕에 푸른 글씨로 썼다.

여러 편의 정기중에서 친구인 응와 이원조의 ‘만화정기’가 눈길을 끈다. 기문의 앞부분은 만화정이 자리잡은 위치에 대해 소개하고 중간부분은 중자의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밝힌다. 그리고 마지막은 정자 주인에게 당부하는 말로 맺었다.


“천지가 자리잡고 만물이 자라는 것은 바로 중화의 지극한 공덕이지만 허술한 대문을 지키고 사는 선비들이 감히 흉내낼 것이 아니다.

(중략) 한가한 때에 정자에 올라 묵묵히 흐르는 물과 솟은 언덕이 움직이고 멈추어 있는 모습에서 도체의 오묘함을 살피고 천지의 조화로운 기운을 항상 가슴에 담아둔다면 그야말로 만화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만화정은 동창천 언덕 위에 서남향으로 세워진 정자다. 나무숲에 가리기는 했으나 숲 사이로 들어오는 동창천이 장관이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왜 나무로 가렸을까? 거기에는 독락獨樂의 즐거움을 추구하던 선비정신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슬쩍 세상을 볼 수 있지만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신비주의, 신비주의를 완성하는 장치로 빼곡이 들어선 나무를 활용했을 것이다. 나무로 차단된 독립공간, 은일의 삶,그러면서 삶의 활기를 채울 줄 아름다운 경관을 노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화정에서 본다.

만화정에서 본 동창천

빼어난 경관은 곧 시로 남기는 것이 조선 선비의 미덕이다. 절도사 윤선웅이 이곳에 와 맑은 물을 보고 감탄했다. 아침에 동창천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고 무릎을 쳤고 만화정에 가득한 봄날의 난초를 보고 행복했으리라. 그 마음을 담아 시를 쓰고 현판을 남겼다.



서로 만나 친해진 운문산의 높은 선비(高士)

산속에 별채를 지었는데 경물이 새롭구나

한 구비 선호仙湖의 물빛은 거울처럼 맑은데

화평한 만화정엔 난초마다 봄빛이구나

문장은 이때부터 집안에서 가업으로 전하더니

천석 泉石까지 함께하여 산수의 주인이 되었구나

내 또한 연하 煙霞를 즐기는 기벽이 있으니

망루의 한가로움 속에 조용히 마음을 한껏 풀어보네

만화정의 편액과 용모양 들보

박시묵은 정자를 근대화 교육의 강학소로 활용했다. 시대는 바야흐로 구한말이었고 열강은 호시탐탐 국토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박시묵은 학생들에게 학비와 숙식료를 받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한 사람의 스승이 수업을 전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각 분야의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해 수업을 실시했다. 학생들은 자계서원, 남계서원, 명계서원 선암서원등에서 추천을 받아 선발했다.그는 강학소와 장학제도를 운영매뉴얼까지 만들었는데 ‘강학소절목’이다. 근대 교육과 장학제도의 근간이 됐다.

김동완 칼럼리스트.jpg
▲ 김동완 자유기고가
만화정은 박시묵의 아들 진계 박재형이 ‘해동속소학’과 ‘해동 속고경중마방등 38권의 저서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해동속소학은 주자가 만든 아동 교재인 ’소학‘을 본따 우리나라 선현들의 언행을 발췌하여 모든 책이다. 고대사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명현들의 가언과 선행을 뽑아 아동들에게 가르치는 인성교육의 교재로 삼기 위해 발간했다.

만화정은 6.25전쟁때 피란민 20여만명이 동창천에 몰리자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청도를 방문했다가 하룻밤 묵고 간 곳이기도 하다.

김동완 자유기고가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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